봄이 오는 길목에서 2004-03-08
먼지는 집착이 강한 물체다.
어지럽도록 휘감겨 도는 물살도 떼어내지 못한 먼지는 여러번을 헹궈도
세탁을 마친 빨래에 희끗하게 달라붙는 통에 눈에 거슬렸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갖춰놓지 않아서 모를 뿐이었지, 있다면 일상생활에 필요할 것이
틀림없는 잡동사니를 파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길을 멈춰 이것저것을 구경하던 중, 세탁볼이라는 물건에 눈길이 닿았다.
쓰임새를 물으니 세탁물에 함께 집어넣으면 찌꺼기를 완전하게 빨아들인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완전하게 제거되지 못한 먼지때문에 애를 먹던 나는 두 개를 구입했다.
그 후 세탁기에 부착되어 있는 걸름망과 빨래와 함께 돌아가는 세탁볼 덕분에
다 빨아진 세탁물에선 희끗한 먼지는 없었다.
전과는 다르게 두 번의 걸름작용 때문이었다.
단순히 걸러내는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빨랫감의 엉킴을 막아주기도 하는 세탁볼을 꺼내
그새 꾸득꾸득해진 먼지를 떼어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얼룩덜룩한 감정을 빨아주는 세탁기가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
티 하나 없이 순백하진 않아도 쉽게 지워내지 못하는 오랜 날의 습관으로
사람에 대한 그리움, 원망이 잊어보려는 고통과 겹쳐선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내면에 찰싹 붙어있다.
그로인해 나를 잃고 싶을 정도의 우울에 빠지는 날이 많다.
그렇게 편치않은 의식들을 물살이 세고 조여짐이 강한 세탁기안에 넣어 돌린다면
절충이 요구되는 감정들이 얼마나 걸러질까?

나는 여지껏 세탁기 윗 부분에 걸쳐있는 한 개의 걸름망에 의존한 채
먼지나 기타 불순물을 건져내고 있었다.
그래선지 대인관계도 일방적이었고, 개체의식은 외골수였다.
거기에서 뻗어나는 감정들은 대개 그리움이었는데, 얼마나 진득했는지
혓바늘이 끊이지 않게 돋을만큼의 집착이었고 몰두였었다.
그러한 것들을 나는 내게 주어진 자유거나 내 몫으로 분배된 환상이라 여겼을 뿐, 그로인해
내 그리움의 대상이 곤혹스러워할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한테나 있을 수 있는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하지만 갈수록 그건 자유나 처음부터 정당하게 꾸려진 내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려울만큼 깊숙하게 들기 시작하며 나를 옭죄는데 밀쳐내기가 힘들어
내 마음 안에 담긴 감정들이 제대로 걸러질 수 있도록 걸름망을 하나 더 넣고 싶다.
그렇게만 한다면
누구라도 무작정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고
부담스러운 감정 또한 품지 않으리라
걸러낸다는 것은 다시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각자는 자신들의 선택이 옳다고 인정하지만 그걸 한 번 더 되뇌여본다면,
채 떨어지지 못한 먼지같이 자신한테는 불필요한,다른 사람한테는 불편한 감정을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제라도 불순물이 다소라도 섞인 의식을 한 번 더 걸러낼 수 있는 망을 스스로 투입해야 겠다는 생각이다.
더는 세 개의 걸름망이 필요할 만큼의 먼지가 다닥한 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봄이 오는 삼월의 길목으로 말간하게 뿌려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