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울만큼만 사랑하자 *** 김현수 ***
  <단편> 소년과 계란 2018-12-20
아침 여덟시, 아들을 내보내고 현관문을 잠그던 금주의 입에선 낮은 한숨이 절로 새나왔다.
병이다 싶게 행동이 찬찬한 남편이나 중학생이 되어서도 하루에 한 두 번은 넘어지거나 부딪치기 일쑤인 아들이 떠난 자리의 흔적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식구들이 흐트러놓고 간 자리를 치울 때 마다 금주는 자신이 거미줄에 걸린 어느 날은 파리만하게 작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말매미처럼 큰 나방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다 한 번 걸리면 빠져나갈 수 없음에 날 짓을 포기해야 하는데도 어떡해서든지 거미줄에서 풀려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자칫 측은하게까지 여겨졌다.
안방 목욕탕으로 들어가 세면기와 심지어 변기 위에까지 떨어져 있는 남편의 머리카락을 물줄기로 흘려보내다 거울에 비친 나이 마흔 다섯의 여자를 바라봤다. 부석부석한 얼굴, 심하게 속을 앓은 적도 별반 없는데 서른 다섯을 넘기면서부터 끼기 시작하던 기미가 눈아래로




내려오더니 흉처럼 짙다.
조금만 자신을 위해 시간이나 돈을 투자한다면 매끄럽고 촉촉하기가 비 온 뒤의 풀잎같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까지 콜드크림을 사들이지 못한 날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랬던 금주가 요즘들어 거울을 자주 봤다.
뚜껑을 닫지 않아 흥건하니 쏟아진 샴푸통을 집어들고 은은한 빛에 자뭇 고혹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날 간혹 있는 욕실거울을 빤히 바라보며 자신도 모를 웃음을 입가에 묻혀봤다.
그리고선 빗자루를 털려고 현관 밖으로 나가려다 전신거울 앞으로 또 다가갔다. 계절탓인가. 구월들어 부쩍 피부에 트러불이 심한 것 같아 볼을 동글거려 문지르자니 마흔 중반에 들어선 여자의 존재감은 불그스레 우러난 홍차처럼 은은할까,
속이 보이긴 하지만 쉽게 만질 수 없는 얼음인 것일까...하는 회의가 치밀어 하루종일 치워도 표나지 않는 일상을 내팽개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였다.
눈 앞으로 바짝 날아오는 뭔가가 보였다.여름을 난 쌀푸대에서 나온 나방이었다. 순간 착잡해있던 마음에 생기가 돌아 바닥에 내려뒀던 빗자루를 들고 나방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뷰기가 발목까지 찼는지 몇 걸음 뛰지 않았는데 숨이 찼지만 한적한 곳에 찾아온 손님이라도 되듯 반가워 나방몰이를 그만 둘 순 없었다. 나풀나풀 언뜻보기엔 나비같기도 한 나방은 작은 방 벽에 내려앉아 쫓기느라 정신없어진 날개를 쉬게 하는데, 탁! 손바닥으로 내리쳐 연한 흙빛가루를 손 안에 묻히고서야 흐흠...하니 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부터 금주는 나방이 날아다니면 손을 내둘러 잡아선 조물조물 으깨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금주를 어머니는 기집애가 그렇게 독해서 어디에 써 먹겠냐고 걱정했지만, 언니처럼 종이나 걸레로 싸 마루밑으로 털어내질 않았다.
그건 죽은 것에 대한 못미더움이었다. 그 버릇은 결혼을 하고나서도 고쳐지질 않았는데, 파리 한 마리 잡아죽이지 못하게 여린 남편은 잡은 나방을 손끝으로 비벼대며 다가오는 금주를 피해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앉기조차 했다. 그러면 금주는 남편을 더 곯려주고 싶어 나방을 잡지도 않았으면서 말매미만한 나방 잡았으니 이번엔 당신이 완전하게 죽여달라고 달겨들기도 했었는데, 금주를 와락 밀쳐내고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은 송장메뚜기의 등빛이었다.
그러고보니 며칠 째 남편의 웃음을 볼 수 없었다는 게 떠올랐다. 이유야 있긴 하지만 설마 그런 것 갖고 그러랴 싶다가도 워낙이 소심한 성격인지라 그럴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닷새 전, 계란말이를 저녁 상 위에 올려놓는 실수를 저질렀었다.
아니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을 따름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곧바로 학원엘 가야 하는 아들의 밥을 얼른얼른 차리다보니 깜빡한 것 뿐인데, 식탁의자에 앉으려던 남편이 수저를 들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역국이 조금 싱겁다는 아들한테 소금을 타주느라 돌아서는 남편을 잡을 틈이 없기도 했었지만 방문을 소리나게 닫고 들어간 남편한테 계란을 치웠으니 식사하라고 말하기가 왠지 싫었다.
덩달아 금주까지 저녁을 굶고 창 밖을 내다보며 계란을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남편과 계란으로 만든 음식을 절대적으로 밝히는 아들 사이에 선 나는 무엇인가...하는 괴리를 삭여야 했다.
손 안에 묻은 나방가루를 비누로 벅벅 문질러 닦아내고선 커피를 타 들고 다른 여자들처럼 아침드라마를 보기 위해 티비앞에 앉는 게 아니라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언제부턴가 신문에 난 기사를 읽기 보다는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를 보는 것에 재미를 들였다. 왠지 신문은 움직임이 전혀 없는 부동체같아 그러잖아도 종일 혼자인 금주를 더 굳게 만드는 듯 했지만, 사이트에 신속하게 올라오는 뉴스를 읽다보면, 본 글보다는 리플에게서 사람냄새가 물씬물씬 풍겼다.
그러면서 가만히 앉아서도 사람이 북적대는 거리를 걷는 듯한 생각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특히, 연예인의 이별이나 이혼에 관한 기사를 읽고나면, 망원경으로 창 안을 훔쳐본 듯한 밀도깊은 쾌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감촉을 즐기기 위해 아침청소를 마치자마자 컴퓨터를 켜는 건 아니였다.
발품을 팔지 않고도 맘에 드는 물건을 싼 값에 구매하고, 또한 맘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기가 일반 매장보다 훨씬 용이한 인터넷쇼핑을 하기 위함인데, 남편은 한 달이면 인터넷으로 구입한 상품이 서너번씩은 꼭 꼭 배송되는 걸 보고선,쇼핑중독이냐고 힐난하기도 했지만, 사람사귀는 일에 둔감한 금주로선,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대충 받아쳤었다.
오늘쯤엔 작년에 눈여겨뒀던 B사의 코트가 신상품으로 나왔을 것 같아 가벼운 손놀림으로 아이디 nkj0908을 쳐 메인화면으로 들어가 스펨메일을 삭제하던 중이었다.

-여보!-라는 제목에 시선이 닿았다. 사실 스펨메일 중 가끔씩은 저속한 제목일수록 열어보고 싶은 충동에 휘말리곤 했었다.
그런 충동이 일면 가슴이 울렁이기조차 했지만 결국엔 스펨메일은 휴지통으로 버려지고 말았었다. 그럼에도 자꾸 lhs1016이란 아이디가 이홍식 시월십육일,결혼기념일...과 연관지어지는데, 큰 일이라도 저지르는 듯 숨을 들이마시고선 -여보!-를 따깍, 누르고 말았다.


[여보, 나는 지금 사무실에 앉아 구름 속으로 차츰차츰 들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
나를 처음 만날 때의 당신은 막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눈부시게 환했었는데, 별스런 호강도 시켜주지 못하는 나와 살며 자신도 모르게 점점 빛을 잃은 게 아닌가...하는 미안함이 붉그레하니 퍼지는 노을만큼이나 애잔하네, 다른 남자들처럼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당신은 원망대신 조용히 지켜보는 것으로 내 맘을 헤아린다는 걸 알지만,
그러기가 당신은 얼마나 힘든지조차 다 알면서도 속을 내보이기 싫어 마음을 웅크리다가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 와이셔츠를 건네주며 방바닥만 바라보던 당신을 본 순간 들었기에 지금 퇴근을 늦추고 당신에게 이메일로 내 마음을 전하려니,
여보... 금주야..... 내 말 좀 들어줘, 우리한테는 사슬에 얽힌 듯 도저히 풀어내지지 않는 기억이나 상처가 한 두가지 씩은 다 있겠지.
조금 영리하거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옥죈 기억이 부식되어 굳기 전에 잊어가겠지만 나는 그러지를 못하고 세월이 갈수록 멍에인지, 덫인지를 뒤집어 쓴 듯 상처깊은 기억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네, 그러기 때문에 나보다 당신이 불편한 적이 더 많았을거야.
당신, 기억하지? 나와 결혼해서 여지껏 비빔밥과 냉면을 먹으러 간 적이 없음을? 또 당신이 은우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할 때였지.
냉면을 먹고 싶어하는 당신을 냉면파는 곳으로 데리고 가선 혼자만 들여보냈던 거 기억해? 그 날 혼자 냉면을 먹다 불쑥 서러워져 사래걸렸던 것도 아직까지 기억해? 그래, 나한테는 계란에 얽힌 유년의 기억이 아직도 나를 아프게 해. 당신은 그저 내가 계란을 먹지 않는 줄로만 알아 라면을 끓여도 계란을 푼 것과 풀지 않은 것을 따로 끓여야 했고, 칼국수를 먹으러 가서도 하나는 계란을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씨익 웃을 때, 다시는 당신과 외식을 하지 말아야지 마음먹었었어.
괜히 식성 까다로운 나 때문에 당신이 괜한 고생하는 듯 했기 때문이야. 여보, 내가 퇴근해서 집에 왔다가 구두도 벗지 않고 두고 온 게 있다하고선 도로 나가던 날 더러 있던 거 생각나니? 또 한 겨울이라도 느닷없이 문이란 문은 다 열어제끼고 창 밖만 보던 나도 떠올릴 수 있니?
내가 조금이라도 다정한 남편이었다면 아마 당신한테 나는 계란을 먹지 않을 뿐 더러 냄새조차 맡기 싫으니, 아니 싫은 게 아니라 비릿한 계란냄새를 맡으면 토할 것 같으니 제발 계란냄새가 집안에 배이지 않게 해 줄 수 없냐고...
미리미리 환풍을 시켜놓으면 안되냐고 부탁했겠지만, 어떡하겠니. 도저히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영 어렵던 걸. 그래서 당신이 황당해할 정도로 태도가 불손했고 돌발적인 적 많았을텐데...여보...내가 계란을 죽어도 먹지 않으려 했던 걸,
아니 계란 자체를 거부해야만 했던 나를 이해해줘, 왜. 왜 내가 씹어 삼키면 그만인 그깟 계란을 바위보다 산보다 더 무겁게 기억속에 내려놔야 했는지를...금주야... 금주야.........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싶어진다... 닭똥을 말려 불쏘시개로 쓰시던, 닭장앞을 서성이며 혼잣말로 뭔가를 중얼대던, 닭장의 철망을 쥐어뜯으며 꺼이꺼이 울던, 닭장안에 있던 일곱 마리의 닭모가지를 비틀어 삶더니 닭 한 마리를 텃밭을 파 깊숙히 묻고나선 우리 형제들 앞으로 한 마리씩 놓아주자마자 방을 나가선 닭장에다 불을 지르던 어머니가, 그새 어두워진 거리의 쓸쓸함으로 보고싶은데...
여보. 나도 이젠 기억속에 박힌 계란만한 유년의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 제발 좀 이제라도 지워야 하지 않을까? 응?]

십 오년을 살아오는 동안 이만큼 말을 오래 한 적이 없던 남편의 편지를 거듭해서 세 번을 읽고나니,
감고 있던 실이 툭 끊긴 듯한 당혹스러움과 엉킨 실타래의 매듭을 끝내 풀지 못하고

더 엉켜놓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삼 년전이었다.
도시에서도 넓게는 아니더라도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과 가끔 시장도 같이 가면서

이웃으로서의 정을 나누는 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데도

집밖에 모르는 금주에게 남편은 인터넷에 취미를 가져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선 아이디가 필요한건데, 대부분 이름이니셜과 생일을 넣더라고 알려줬을 뿐

나와는 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nkj0908을 알아냈을까..,의아했다.
아마도 남편은 내가 살아가면서 어떠한 일을 두고 잔꾀를 부리거나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대번에 나의 아이디를 꿰맞췄을 것 같아 나도 내 생일 대신 남편과 함께인 결혼날짜를 집어넣을 걸...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다른 날 같으면 한 시간 정도면 충분했던 인터넷접속을 켜둔 채 집안 일을 했다.

그러면서 빨래를 널다가도 들어와 메일을 확인했고, 머리를 감고 나와서도 감아올린 수건 밑으로 물이 뚝뚝 흘러도

한참을 받은 메일함에 마우스를 대고 있었다. 뭔가에 쫓기는 듯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듯도 한 아리송한 기분은

저녁무렵까지 이어졌다.
그리다가도 집안에 계란냄새가 배어 있을까, 선풍기를 틀어놓고 몇 끼니를 차려내도 마다않는 된장찌개를 끓이면서도

지금쯤 메일함엔 다 하지 못한 남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아 안절부절이었다.
그 날 밤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기 조금 전에 들어온 남편은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은우 학원갔냐는 말 외엔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바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며 짓는 남편의 눈물을 보면서도

무표정한 남편이 lhs1016, 그 사람이 맞는건지 묻고 싶었지만 여주인공이 쉼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며
-여보! 나 저 파도처럼 잊혀질만하면 떠올라 당신 기억속에 영원히 남고 싶어- 하며 울부짖는 장면을 더는 볼 수 없어선지
눈을 감고 있는 남편한테서 어둔 빛이 스미고 있었다.

찻물을 따르다 발등에 뜨거운 물이 떨어졌지만 소리를 지르진 못했다.

그저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한 남편의 유년속에서 한 점 딱정이로, 한 올의 핏줄기로 머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금주는 새벽이 될 때 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 좋은 꿈을 꾸는지 끙끙 앓으며 뒤척이는 남편을 바라보자니

저 이의 기억에 들어있는 유년은 얼마나 아픈 것일까,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그림자만큼이나 애잔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들이 나가자마자 잔뜩 어질러진 방을 치우지 않고 메일함부터 열었지만 남편의 것은 없었다.

그럴테지...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속을 모르겠던 사람인데, 쉽게 말할 사람은 아니지...

어쩌면 얼핏이라도 나한테 말한 걸 후회할지 몰라, 생각은 그리 하면서도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컴퓨터 앞을 서성였고,

오늘밤엔 무슨 말이라도 할까 싶어 앞에서 머뭇대기도 했지만

닷새가 지난 오늘 아침에서야 남편이 보낸 두 번째의 메일을 열 수 있었다.

남편은 제목없음으로 나를 부르며 아직까지 친친 감겨있는 유년의 줄기를 끊어내고 있었다.

여보! 가을인가봐,
나는 여름인지 가을인지 채 모르겠는데, 직원들끼리 가까운 곳이라도 단풍 고울 때 산에 가자고 얘기하는 걸 보니

가을은 가을인가봐,
금주 당신은 안 그래? 여보! 우리 가을 더 깊어가면 나 놀던 강에 가자,

기묘한 형상으로 둘러친 바위, 가을햇살에 반들반들 빛날 고향의 강에 가서 어머니한테 혼나면 달려가 멱을 감고,

저녁노을 물드면 물 속에다 고개를 들이대고 다슬기를 잡던 강에 가자,
가서, 사랑은 주지 않았을망정 당신 자식으로 태어난 걸 고마워했을 어머니를 크게, 정말 눈물날만큼 크게 불러보자.

그 때 당신은 가만히 있으면 돼, 공무원의 딸로 태어나 부모로부터 공평하게 사랑받고 자란 당신은,

부모의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던 사랑을 슬퍼한 소년의 유년을 바라만 보고 있어 줘,

여보! 사실은 조금 더 일찍 유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
아니 유년을 이해하고 싶었어. 허나 그러면 그럴수록 세월은 유년과 나를 한데 묶어 꼼짝도 못하게 억누르는데,

그걸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기 위해선 나는 표정을 감춰야 했고, 입을 다물어야 했어,
내 옆에 당신이 있는데도, 당신이라면 그깟것, 살짝 긁힌 상처같은 건데 뭘 그리 아파하냐고,

면박이 섞인 위로를 해 줄거란 걸 알지만, 어릴 때부터 묶어놓은 이 놈의 자존심 때문에 당신마저를 다가오지 못하게 경계선을 그어놨었지.
그런데 은우가 커갈수록 당신이나 나를 닮기보다는 당신은 본 적 없는 우리 형을 점점 닮았가는데,

나는 그걸 어떤 계시라고 여겼어. 어릴 때부터 경계하고 미워하고 시샘을 부렸던 형과 이젠 화해를 하라는,
동시에 형보다 더 적개심을 가졌었던 어머니까지를 이해하라는, 세월이 풀어주는 암시라고 느껴지더군,

그러기 위해선 나는 계란을 먹어야 했어.
여지껏 열 살 이후로 한 번도 먹은 적 없는, 나한테는 적과도 같은 계란을 동지로 받아들여야 했지.

그런데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막상 계란을 보거나 냄새만 맡아도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당신은 모를거야.
불덩이보다 더 뜨거운, 얼음물보다 더 차가운, 정말 형체를 알 수 없는 게 꾹꾹 치밀어 오르는데,

그럴 때면 여보! 나 정말 울고 싶었어.
여보! 이제 조금 그간의 나를 이해할 것 같니? 며칠 전, 계란말이 했던 날,

사실은 낮에 사무실에서 아랫사람한테 괜한 질책을 하고선 우울했었거든.
집에 와서도 그 직원의 당황해하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나는 왜 이렇게 대범하지 못하고, 모든 걸 일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 원인을 원만하게 지내지 못한 유년때문인 걸로 인정할 수 밖에 없던 차에 식탁에 앉으려니 평생 원수같은 계란이 눈에 보이는데, 그토록 싫어하는 줄 알면서 버젓이 상에 올려놓은 당신이 야속하더라.
그래서 여느 날과 다르게 안 좋은 모습으로 방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내 후회했어. 저 사람이 무슨 잘못이냐고, 잘못이라면

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는 것과, 더 모지락스레 가난할망정 자식들을 두루두루 아끼던 어머니를 두지 못하고

오로지 큰아들만이 희망이고 끝내 절망이던 여자를 어머니로 둔 내 잘못이었는데 말이야.
당신, 우리 어머니, 아직도 안타까워하니? 당신을 어느 날은 며느리였다가 어느 날은 딸이었다가 어느 날은 시어머니로 대하던,

십분 후를 장담할 수 없게 오락가락하던 우리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가시는 날까지 진심이었던 그 마음을 다시 내놓을 수 있겠니?
오히려 아들인 내가 어머니의 치매를 못견뎌하며 악을 쓰고, 몇 날이고 방조차 들여다보지 않을 때,

당신은 나더러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아들인 당신없이도 나는 어머니를 돌봐드릴 수 있다고,

어머니 돌아가시고 후회할 짓이라면 당장 접으라며 냉정하게 말할 때, 표정이 우는 것도 같고 웃는 것 같기도 한 내 얼굴을 봤다면

당신은 나까지 미친 사람으로 몰았을거야. 당신이 우리 어머니를 위해 나를 몰아부칠 때, 나. 나. 사실은 너무 기뻤어.
너무 좋았어. 아니, 아니, 너무 슬펐어. 어쩌다 우리 어머니는 나같은 자식을 뒀을까,

만약에 누나들이 며느리인 당신만 같았어도 다 잊지 못하고 정신줄 놓은 어머니의 세월이 그다지 헛헛하진 않을텐데.

..여지껏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난 건 자식들인 줄 알았는데, 금주 당신을 통해 불행했던 건 자식들을 잘못 둔

우리 어머니였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아버지는 기억에 없어,
들어 알겠지만 내가 젖을 뗄 무렵에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 했으니까,

솥단지 달굴 새 없이 가난하면 자식이나 덜 낳지, 무슨 놈의 정이 그리 깊어 연년생으로 누나 넷과 형을 낳고,

시름시름 앓으면서까지 합방을 하여 나를 태어나게 했는지.
그에 대한 원망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 먹구름처럼 짙게 몰려다니기 시작했지.
여보!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우울해지는 거 아냐? 그러지마, 금주 당신은 나 때문에 참 많이 속상했을테니까,

지금 내가 하는 얘기일랑 그냥 한 소년이 한 소녀에게 고백하며 끊어내는 매듭정도로 여겨줬으면 해, 정말이야,
그냥 잠깐 스치고 가는 바람처럼 가볍게 남아줬으면 해.... 나는 지금껏 가난했던 나의 유년기를 원망한 건 아니었어,

다만 정직하지 못했던 나의 열 살을 나 자신이 용서하지 못했을 뿐이야.

툭, 끊어내면 홀가분한 사슬에 일부러 매여놓고서는 아파했을 뿐이야...
그런데 이젠 꽉 감아버린 마음의 눈을 뜨고선 열 살의 나와 손을 잡고 싶어...

늘 추워 떨던 열 살의 소년을 따듯하게 안아주고 싶단 말이야. 그러기 위해선 나 많은 용기가 필요할 듯 한데,

내 여자인 게 늘 고마운 금주야...내 옆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바짝 와 주지 않을래?
당신은 지금부터 어느 시골로 가는거야, 가서 그 마을에서 가장 초라한 집 마당으로 들어서야 해,

그리고선 닭장 앞으로 가 서면 돼, 거기서 희뿌윰하게 밝은 새벽에 방문을 살짝 열고 나와 닭장 안으로 들어가는

한 소년의 팔을 잡아채야 해... 그러지 말라고,
그 계란은 형이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어머니도 웃고, 형도 죽지 않는 거라고..

.감나무를 휘돌아가는 바람도 듣지 못하게 가만가만 말해줘야 해...꼭 그래줘야 해...응? 금주야...............

그동안 남편은 안개에 갇혀 있었다.안개이기도 했다. 아무도 들어서지 못하도록 겹겹이 둘러 쳐놓은 장막같은 안개.....
그만치나 막막했던 사람이 안개를 풀어내기 위해, 안개숲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한테 편지를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남편이 안쓰러웠고, ,며느리를 큰 딸로 알아 이름을 부르며 어서 어서 업히라며 등을 내밀던 시어머니에 대한 사모가

덩달아 끓어 올랐다. 참으려 했지만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흘러내렸고, 두 번을 읽기가 너무 마음아파

퍽이나 애절하게 불렀을 금주야...에 시선을 꽂으며 나뉘어 흐르던 강줄기가 하나로 뭉치는 여울목을 떠올렸다.
그리고선 가을이 더 깊어지면 어머니한테 사랑받지 못해 핼쓱했을 소년의 강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금주는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집으로 들어선 남편을 보고 어떻게 대해야 하나...

전처럼 가늘게 웃어야 하나...아니면 말없이 안겨야 하나...그것도 아니면 침묵으로 그의 상처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나...

주차장으로 끊임없이 들어서는 자동차들을 베란다에 서서 바라보며 이상하게도 남편의 아주 늦은 귀가를 기다렸다.
거기에다 술까지 취하도록 마시기를, 그런다면 무슨 술을 이리 마셨냐는 잔소리로 꺼내기 애매한 첫 말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은 어제와 같은 시간에 퇴근을 했고, 금주 역시 어제처럼 한 발 비켜 방으로 들어가는 길을 터주고 말았다.

식탁 가운데에서 보글거리는 청국장을 한 수저 떠 입에 대려던 남편이 찌개를 먹지 않고 멸치, 김으로 마른 밥을 먹는 은우한테

넌즈시 '청국장이 얼마나 맛있는데 안 먹느냐'고 말하자' 아빠는 그럼 계란이 얼마나 맛있는데 안 먹는거야?'
하며 되받아치는데 옆에서 두 사람을 번갈아보던 금주는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남편은 '그런가? '하며 '야,어떻게 계란냄새하고 청국장냄새하고를 비교하니? 계란냄새는 비릿하니 도시냄새가 나지만

청국장냄새는 구수하니 고향맛이질 않니? '
하며 크크거리는데, 금주의 가슴이 뭉쿨했던 건 남편이 닫아두었던 유년의 대문을 삐그덕 열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 날 밤, 남편은 아홉시 뉴스에서 이번 추석에는 유난히 귀성객이 많을거라는, 그 이유는 갈수록 타향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진다는 증거라고, 우리 모두에게는 비빌 언덕 하나쯤은 갖고 있는데, 그 곳의 대부분은 고향에 자리잡고 있다고,
그러기에 고속도로에서 쉬어 쉬어 갈 망정 모두들 고향가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라는 리포터의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선 이렇게 묻고 싶었다.

여보, 당신은 지금 털털거림이 심한 흙길을 걸어 고향으로 가는거지? 나랑 나랑 같이 가는거지?

남편의 성격이나 행동이 잽싸질 않고 굼뜬 편인 걸 아는 금주는 첫 번째 편지를 받고 난 후처럼 다음에 올 메일을 조급하게 기다리지 않았다.
곪은 자리가 깊은 상처는 한꺼번에 피고름이 빠지질 않고 며칠이 지나도록 스름스름 배어 나오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낮동안은 몇 번씩 메일함을 열어보곤 했다. 그렇게 느껴선가? 남편의 표정이 많이 풀려 있다는 걸 느꼈다.
지방대학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곳에서 부서는 다르지만 하루에 두 세 번은 꼭 만나지던 남편과 사내연애를 걸쳐

결혼하긴 했지만, 처음 남편에 대한 첫 인상은 지금보다 더하게 침울함과 냉랭함이 전체적이었다.

그럼에도 하루가 다르게 이홍식이란 남자한테로 쏠리는 감정은 깊어졌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손위 시누이가 셋이나 되는 집안으로 시집보낼 수 없다는 어머니와 결혼식 전 날까지 맞서며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아내로서 그를 위하는 일은,

남편이 말없으면 따라 말없고 남편이 웃으면 따라 웃는 어찌보면 인형처럼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것 만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들른 딸을 시집으로 보내며 쳐다보지도 않고'

내 말 안 들었으니 살며 절대 후회일랑 말아라...설령 후회될 일 있어도 에미한테 털어놓지 말고 네 몫으로 품고 살아라...'

했던 어머니를 위하는 길이기도 했다.
금주를 대하는 남편의 마음가짐은 한번도 아래를 보거나 흐트러지지 않았었다. 단지 표현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실은 실바람에도 금주가 흔들릴까 마음쓴다는 걸 묵묵하게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늘 마음을 닫고 살아선지 남편의 이마엔 나이보다 깊은 주름이 세 골이나 파였다. 금주는 그 주름을 보며 남편의 심기를 헤아리곤 했었는데, 어제부터 남편 이마의 주름이 두 개 정도였다가 하나로 줄어들었다가 또 두 개로 늘어날 뿐, 세 개 전부가 파이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남편은 정말 친친 감긴 유년의 끈을 잘라내기 위해 가위를 들었나보다고, 한껏 대견해하던 아침에 금주는

세 번째 보낸 남편의 메일을 읽었다.


오늘은 하늘을 참 많이 바라봤네,
출근하는 길엔 구름이 한 쪽으로 쏠려 있더니 오후들어서면서부터 점점 점점 흩어져 따로따로 흐르더니,

해가 저물자 다시 한데 모여 웅성대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일상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요즘 마음이 어땠어? 혹시 나를 미련스럽다 흉보진 않았어? 저울에 달면 바늘조차 움직이지 않게 가벼운 것 갖고 끙끙댄다고,

또 그렇게 무거우면 같이 들자 하지 않고 혼자 버거워하냐는 원망이진 않았어?
금주 당신도 느꼈는지 모르지만, 나 요즘 마음이 편해, 그냥 무조건 편해졌어. 그건 가슴속에 들어찼던 바윗덩이를

가슴문앞까지 옮겼기 때문일거야. 그러고나니 답답하던 속으로 바람이 새들어왔는지, 이젠 숨을 쉴 수 있게 됐어. 힘들었지?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당신맘도 아프면서 안 아픈 척 하느라 정말 요 며칠 속상했지? 미안해..여보...

구월도 얼추 다 가네, 얼마 안 있으면 우리가 결혼한 날이 돌아오는데, 당신은 결혼기념일에 뭘 생각해?

나는 말이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는 장모님과, 그런 장모님 모르게 힘내라고 등 두드려주시는 장인어른이 떠올라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 한 쪽이 무척 불편했어. 아니 쓸쓸했어.
그러면서도 장모님한테는 미덥진 못한 사위로 출발했지만 달리는 중간 지점에선 믿음찬 눈빛으로 대해주실 거라는, 나로선 희망인 게 확실한 신념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장모님이 맘에 딱 들만큼 잘 살질 못하니...여보, 금주야...우리 이번 결혼 기념일엔 다른 데 가지 말고 장인어른과 장모님과 함께 KTX 타고 목포로 낙지 먹으러 가자,
언젠가 장인어른이 점점 머리숱이 없어지는 당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이서방...나는 자네를 믿네, 내 머리가 낙지만큼 다 빠질 때 까지 살아서 자네를 지켜볼거야. 아니 그때까지 자네에 대한 신뢰를 잇고 있을거야...자네가 지금처럼만 성실하게 살아 자네 장모가 자네한테 술 한 잔 따라주는 모습을 보고 말거야...나로선 그것만큼 큰 바람이 없거든...하시는데,
그때 나는 느꼈어. 아버지의 정이라는 것이 이런거구나. 나는 내 아버지 얼굴을 기억못하니까 내게 있어 아버지란 오직 장인어른뿐인데, 자식이라면 아버지가 바라는 걸 이루기 위해 몸을 내던져야 하거늘, 여보, 금주야!
우리 아버님이 활짝 웃으시게 이번 시월 십 육일엔 두 분 모시고 가서 여지껏 잘 지내온 우리 마음 보여드리자. 정말 낙지만큼 걸릴 게 없이 매끄러운 우리 사는 모습 보여드리자... 이런, 나는 늘 이래. 정작 해야 할 말은 놔두고 늘 옆길로 샌단 말이야...음...
저번에 내가 썼던 끝부분 기억해? 당신은 아무 말 하지 말고 닭장 안으로 들어가는 소년의 팔을 잡아채라고 했었지? 그래. 그랬을거야...
여보, 가서 커피 한 잔 타 들고 와, 그리고선 나랑 같이 가슴문앞까지 드러난 유년의 바윗덩이를 끌어내자...끌어내선 다시는 보이지 않게 먼 데로 들어다 놓자.

나는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열 살 이전의 유년은 기억에다 담아주지 않았어.
그건 열 살부터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성격이 까탈스러웠었나봐,
누나가 넷이나 있는데도 어머니가 아니면 업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어머니한테 멍이 들만큼 꼬집히기도 했었다는데, 다른 집들처럼 늦게 난 자식한테 베풀어야 할 관심과 사랑을 어머니는 네 살이 많던 형한테 쏟느라 나를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었다는 걸 당신도 어머니 기일에 누나들이 하는 소릴 들었을거야. 그랬었어.
나란 존재는 어머니한테는 부러진 숟갈만큼도 아니였어. 오로지 형뿐이었어. 그 때 우리는 닭을 일곱마리 키우고 있었어. 그 닭 모두가 알을 낳는 게 아니라 세 마리만 알닭이었는데,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얀 사기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들고는 닭장안으로 들어가 계란을 세 알씩 담아와선 방으로 들어섰지, 그리고선 형을 당신 앞에 바짝 앉히고선 벽장에 놓아둔 젓가락으로 계란 양 끝을 톡, 쳐서 형 입에 대어줬어.
나와 누나들은 형의 계란이 목젖을 꼴깍, 건드리고 넘어갈 때 까지 조용해야 했어, 만약에라도 맛있겠다는 둥, 나도 먹고 싶다는 둥. 딴소리가 터져나오면 어머니는 눈을 무섭도록 흘기면서 쓰잘데기없는 것들이 먹는 탐은 에지간히도 많다면서, 불결한? 혹은 발칙한 꼴을 본다는 듯 혀까지 끌끌대곤 했지,
그 때 내 나이 열살이었어, 형은 열 네 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는데도 읍내 중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애비없이도 이만큼 자식 잘 키운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는 식의 자부심을 어머니 어깨에 듬뿍 얹어줘서 남의 허드렛일을 할 망정 으쓱이게 했었지.
나 역시 열 살이 되기 전까진 그렇게 똑똑한 형을 뒀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지. 그래서 미끌미끌한 흰자가 턱 아래로 떨어지면 그것마저 아까운 어머니, 손으로 훔쳐 형 입으로 넣어주건 말건 서운한 마음을 갖지 않았었는데,
열 살이 되던 봄이었지
긴 겨울을 짠지 한 가지로 지내고 나선가, 걷자면 어지럽고, 늘 일등이던 달리기마저 이등, 삼등으로 쳐지고 마는거야. 그래도 계란 세 개중 한 개는 형의 목젖을 건들며 뱃 속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두 개는 짚으로 꽈 만든 계란받이에 모아뒀다가 이틀에 한 번씩, 네 개를 지서장네 집으로 갖다 뒀지,
그런데 그 심부름을 누가 했냐면, 나였어, 나는 싫다고, 그 집에 가면 짝궁인 혜란이가 있어서 정말 가기 싫다고 하면 어머니는 그럼 니 형한테 그런 일을 시키냐고... 객쩍은 소리 말고 넘어져도 계란 깨지지 않게 몸을 땅에 대라고...절대로 손을 놔서는 안된다고... 어머니는 얼음을 문 듯 으득거리면서 말하곤 했어, 그렇게 안 간다. 가야 한다...옥신각신하는 꼴이 더는 볼 수 없게 역겨웠는지,
아니면 같은 반 아이한테 하찮게 보일 동생이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형이 방문을 열고 나와선,내가 갖다 오겠다고 하며 내 손에 들린 계란짚에 손을 대는데, 우리 어머니 쏜살같이 달려와선 형 손에 반, 내 손에 반쯤 들린 계란짚을 빼앗다가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지, 그러자 어머니는 장대를 들고 와 나를 후려치며, 병신같은 놈, 하는 짓이 어찌 그 모양이냐고, 아이고 호랑이는 뭐 먹고 사는지 몰라, 저런 놈 안 잡아먹고!!!하며 바락바락 악을 썼지... 그래서 나는 그 날 학교에 가지 않고 뒷산으로 가 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취해 종일을 잠만 잤어.
자고 나니 저물었더군, 점심을 굶어 꾀죄죄한 꼴로 들어서는 나를 어머니는 본체만체하는데, 큰 누나가 형한테 들었는지 나를 뒷곁으로 데리고 가더니, 홍식아, 사람한테는 제 복이 있단다, 홍찬이는 어머니한테 사랑받을 복을 지녔고, 너한테는 다른 복이 있을거야...
그러니 절대로 홍찬이가 먹는 계란을 탐내선 안돼, 그리고 홍찬이는 지금 아프잖아, 너처럼 건강하다면 어머니는 계란을 널 줄거야...그럼 널 주고말고, 우리 홍식이가 얼마나 예쁜 아이인데..........나는 아침에 장대로 맞으면서도 울지 않았던 울음을 큰누나 품에 안겨 터트렸어.
누나....누나.....나 누나를 엄마할거야....엄마는 엄마 안 할거야....그날 밤 나는 아침에 맞은 등이 욱씬거려 잠을 잘 수 없었어, 그래서 이리뒤척 저리뒤척이는데 갑자기 한 생각이 스치는거야... 다음 날 새벽이었어, 닭이 울기를 기다렸어,
그 때를 생각하면 고작 열 살 짜리가 어떻게 밤을 꼬박 새워 닭울음을 기다릴 수 있었을까... 그러고보면 마음만 먹으면 하지 못할 것도 없는 게 세상인가봐,
그처럼 수월한 게 세상살이인가봐. 나는 닭이 홰치기를 기다렸다가 어머니가 깰새라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나와 닭장 안으로 들어갔어.
그 날 아침, 어머니는 형한테 먹일 계란을 들고와선 '희안하네, 어째 알을 낳지 않았을까, 야....홍자야...너 어제 닭한테 지대로 모이줬냐? 일났구먼, 계란은 두 개 뿐인데, 우리 장남 안 먹일 수 없고, 지서장네 계란을 빠뜨릴 수도 없고....야! 홍자야. 너 오늘 지대로 닭모이줘라...내일도 알 못 낳으면 낭패이니까....'
그 다음 날 새벽에 나는 또 어머니보다 먼저 닭장에 들어갔어. 그 날 형은 계란을 들고 와 우물쭈물하는 어머니한테 '나는 안 먹어도 돼' 하여 끝내 어머니의 쯧쯧거림을 부추겼지,
몇 년에 걸러 매일 세 알씩 낳던 닭이 이틀을 두 개만 낳자 어머니는 걸음을 뗄 때 마다 별 일이라고 혼잣말을 늘어놨지만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나한테선 이상하게 힘이 솟아나고 있었어, 이젠 달리기도 전처럼 일등을 할 것 같았고, 아지랑이가 제 아무리 극성스레 피어나도 하나도 어지럽지가 않았어.
그렇게 사흘을 어머니보다 먼저 일어나 닭장 안에 들어간 나 때문에 형이 계란을 먹지 못하게 되었는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 알지?
닷새 째 되는 새벽이었어, 이젠 억지로 잠을 쫓아가며 닭이 울기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때였지. 꼬끼오!! 꼬끼오!!
며칠 낮잠으로 떼운 잠에 취해선지 눈이 떠지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늦추면 어머니한테 계란을 빼앗길 것 같아, 벌떡 일어나 닭장 안으로 들어가 뜨끈뜨끈한 계란 한 알을 들고 나와 닭장문을 잠그는데, 뒤에서 목덜미를 나꿔채는 손이 있었어.
'아이고, 이 도둑놈봐라, 야, 이놈아 여지껏 네 놈 짓이었냐? 응? 여지껏 계란 훔쳐 간 게 네 놈이었냐고...'하며 내 손에 쥔 계란을 빼앗으려고 나를 덮치는데, 그 소란에 놀라 뛰쳐나온 큰누나가 어머니를 나한테서 떼어내며 '이 손 놓아요, 이 손 놓으라구요!! 엄마, 막내도 계란 먹을 자격있어요,
얘도 홍찬이처럼 계란 한 개 쯤은 당당하게 먹을 권리 있다구요. 왜냐구요? 엄마 자식이니까요. 그러니까 이 손 놓으세요, ' 하지만 엄마는 별 미친 소리 듣겠다며 큰누나를 홱 밀어부치고선 나한테서 뺏은 계란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잠시 후 울먹거리면서 말하는 형의 목소리가 잠결에도 들리는 닭울음만큼이나 크게 들리더라
' 엄마! 엄마! 나 계란 그만 먹을 거에요, 나 계란 안 먹어도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엄마, 앞으로 나한테 줄 계란 홍식이 먹이세요, 말을 안해서 그렇지 엄마, 나 그동안 나 혼자 계란 먹으면서 얼마나 홍식이한테 미안했는지, 하루종일 속이 답답했어요. 그러니까 엄마, 나 체기없이 속 편하게 살게 하고 싶으면 계란을 홍식이 먹이든지, 지서장네한테 팔지 말고 누나들도 먹이고 하세요,
엄마는 계란판 돈 모아서 나 중학교 갈 때 쓴다고 하는데, 엄마!! 엄마!! 나 말이에요, 식구들 맘 아프게 한 돈으로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단 하루를 살더라도 식구들과 오손도손 살고 싶단 말이에요!!'
얼굴에 핏기를 잃어가며 절규하는 형을 붙잡고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기만 할 뿐, 전처럼 나한테 눈을 흘기질 않았어, 하지만 이튿날에도 어머니는 계란을 들고 와 형에게 내밀었어.
그러자 형은 고개를 저으며 홍식이나 먹이라고 하는데, 우리 어머니 그때 뭐라 했는지 알아? 그럴바에는 차라리 지나가는 개나 주겠다고... 여보! 금주야, 나는 그 때 개만도 못한 존재였어. 당신도 느꼈을까?
생전의 어머니를 대하던 내 눈빛을, 또 기일에 술잔을 올리면서도 절대로 애절하지 않던,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들어선 자식을 개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한 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은 실은 지금도 강해, 강하기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운거야.
나를 줄 바에야 차라리 개를 주겠다는 어머니의 독설을 형도 참을 수 없었는지, 막 입에 대려는 계란을 벽에 던지고선, 제발 어머니 속에 들어찬 한 자식에 대한 가엾음을 버려라, 한 자식에게 품은 희망을 잊어라...
몸이 아파 놀이보다는 책보기를 즐겨하던 형은 열 네 살 답지 않은 표현으로 어머니의 가슴에 어쩜 나보다 더 큰 못을 박았었지.
그 다음 날부터 형은 계란을 먹지 않았고, 일주일에 세 번 가던 걸 네 번을 가는데. 살아가려면 가기 싫은 길도 걸어야 한다는 걸 , 어린 나이에 나는 혜란이네 가는 길에서 느꼈던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 집 앞에서 서성거리다 대문을 두들겨야 했어, 그러면 기다리기라도 한 듯 쪼르르 달려나와 계란짚을 받아들고 가며 살짝 웃던 혜란이가 이처럼 코스모스 원없이 피어나는 가을이면, 당신한테는 미안하게도 더러 생각나.
그러다 혜란이가 전학을 가고, 계란 팔 곳도 없던 내 나이 열 두 살 때였어,
어디가 아픈지조차 모르게 머리의 통증이 심한지 물수건이 자주 얹혀있고, 실핏줄이 보일만큼 맑은 얼굴이 점점 야위고 파리해지던 형이 죽어버렸어.
며칠 째 학교를 못 가고 방을 나서지 못하게 앓는 형을 큰 병원으로 싣고 갔던 어머니가 당신보다 훌쩍 큰 형을 업고 대문으로 들어서선,
펄썩 주저앉았는데, 땅바닥으로 내려졌음에도 혼자 일어나지 못하고 어머니 따라 주저앉아 있던 형이 나를 보고 씨익 웃는데, 여보! 금주야! 얼음이 갈라질 때 나는 소리 들어봤니? 얼음이 깨지면서 내는 소리도 들어봤니? 그 때 우리 집안 곳 곳엔 얼음이 툭, 툭, 툭, 툭, 갈라지고 있었어, 어머니의 가슴도 누나들의 마음도 또 나도...

형을 화장해서 강에 뿌리고 온 다음 다음 날, 어머니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어, 아침마다 닭장에 들어가 계란을 꺼내와선 '홍찬아,,,,계란먹어라,, 그래야 건강하지. 그래야 오래 살지...'하며 앞에 아무도 없는데 형한테 하듯이 젓가락으로 계란 끝을 깨트려 들이미는거야.
그러다보면 계란물이 줄줄 흘러내렸는데, '아이고, 우리 홍찬이 입맛이 없나보네, 그렇게 좋아하는 계란까지 못 먹으니...'하면서 손으로 쓸어담아서는 '아...아...우리 아기 착하지...아...아....'하는거야, 늘 그런 건 아니였어, 그런 증상은 대부분 아침나절에 있었는데, 아마 형을 잃고나서부터 어머니의 의식은 갈라지기 시작했었나봐,
누나들과 나는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지켜볼 뿐, 지금처럼 정신과를 찾아간다거나 하질 못했지, 그런저런 날이 며칠 지나서였지. 어머니가 큰 누나를 부르더니 가마솥에 물을 잔뜩 끓이라고, 오늘은 닭을 모조리 잡아 삶아야겠다고, 계란을 팔아 가르칠 자식도 이젠 없는데, 닭똥치우기도 지겹다고, 닭울음 우는 새벽을 맞기가 더는 서러워서 못 살겠다고...
그 날 나는 어머니가 한 마리씩 삶아내온 닭을 먹지 않았는데, 생각이 어렸기 때문이었을까? 자꾸 형을 내가 죽였다는, 내가 형의 계란을 훔쳐 먹었기 때문에 형의 병이 깊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마 내가 그러지만 않고 형이 어머니가 베푸는 특별한 사랑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면 형은 죽어 어머니를 저렇게 슬프게 하지 않았을거라는..생각에 몰려 닭을 먹지 않자, 우리 어머니, 처음이다 싶게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먹어라 죽은 사람은 죽었다치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시는데,
그때 다짐했어, 죽을 때까지 형을 잃게 한 계란을 먹지 않겠다고... 그런저런 기억때문에 정작 힘들었던 건 나보단, 내 옆에 오래 있어 형을 무척 닮은 은우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은 큰누나와, 언뜻언뜻 정신이 돌아오면 나한테 용서를 구하듯 바라보던 어머니와, 또 죄될 게 아니지만 죄만큼이나 두려운 유년에 갇혀 제대로 감정을 표현못한 나때문에 많은 날이 외로웠을 당신이었을거야.
하지만 여보, 나 몹쓸 기억에 사로잡혔던 유년을 다는 아니겠지만 견딜 수 있을만큼은 끌어냈으니, 나 앞으로 당신한테 좋은 남편, 아니 멋진 남자일 수 있겠지?
금주야..애썼다. 하하거리며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고 덩달아 우울할 게 사실인 이야기를 며칠에 걸러 삭이느라...
노을이 또 곱게, 십 칠년전 어느 가을 날, 내 책상위에 놓여있던 메모지를 펼쳐보고나서 바라본 저녁무렵의 노을처럼 붉기도 하네, 딱딱하고 침울한 남자한테로 다가오느라 애탔을 당신마음만치나 붉디붉네, 남들은 그걸 깊은 사랑이라 하던가?
여보, 나 할 말을 다해선지 허전하고 또 조금은 슬퍼지고, 또 조금은 가볍고 그러네, 여보, 우리 얼마 안 남은 결혼기념일에 기차안에서 먹게 계란을 좀 넉넉히 삶아가면 어떨까? 몇 십년 전 도리질쳤던 계란과 만나는 한 소년의 모습을 당신, 재미난 표정으로 지켜보지 않을래?"


남편의 편지를 읽고 난 금주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하늘을 봤다.
하늘 저쪽으론 구름이 풍성하니 부풀어오른 계란흰자처럼 몽실몽실 퍼져나고 있었고, 그 구름너머로 짚바구니에 든 계란을 들고 달리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 소년이 사라진 자리로 재두루미 떼를 지어 날아가는데, 너울너울거리는 새 떼를 좇아 한참을 바라보다 금주는 소년을 향해 소리쳐 주고 싶었다.
지금은 가을이라고, 타인을 위해 지녔던 자신의 무게를 털어내면 존재성이 한층 오롯할 벼이삭의 가을, 한창 무르익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털어내며 채우며 살아가 보자고 계란처럼 동글동글하게 굴리면 굴려지는대로 그걸 순리라고 여기면서 살아가자고. 그것만이 마음에 멍이 든 채로 살아온 당신의 유년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또 잊어가는거라고, 그래야 당신의 어머니도, 형도, 큰 누나도 저기 하늘에서 계란처럼 동글동글하게 웃어 주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