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울만큼만 사랑하자 *** 김현수 ***
  <단편> 고리 2018-12-20
비가 드문 가을이었다
올 가을은 짧다더니 아니였다. 짙게 물들대로 물든 나뭇잎들이 아파트 담장에 바짝 세워둔 대형파라솔 위로
붉게, 노랗게 떨어져 쌓였고, 묶음없이 펼쳐놓은 푸성귀속까지 파들기도 했다.
가을이란 계절은 많은 사람들을 제 자리에서 떠나게 했다.
시월 중순엔 산을 올라야 제대로 익은 가을을 볼 수 있다는건지.
여럿여럿이 함께 떠나는 여자들과 강경 젓갈시장으로 가는 발길도
간간이 보였다.
혼자 있으면 영 죽을 듯 쓸쓸한 계절이 가을이었지만, 근 삼 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 앉아
손톱이 까매지도록 마늘과 도라지를 까거나 시금치 아욱 총각무를 따로 다듬지 않아도 될만큼 손질하는
육십할머니만이 비 없이 늘창 맑은 가을을 고마와할 뿐이었다.
가을이 따로없이 곧 겨울이라는 말을 듣던 날은 종일 심란했다. 일년중 제일 장사가 수월하게 잘 되는 때가
시월 중순부터 십이월 초순까지였기 때문이었다.
봄부터 여름까진 팔리는 몫이 작아 흥도 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오후들면서부턴 정신이 없었다.
길 건너 큰 시장에선 무슨 채소든지 뿌리채 흙채 다발로 묶어논 것이기에 손대지 않고 코풀기에 인이 배긴
요즘 여자들한텐 육십할머니가 다듬어논 채소는 인기가 많았다.
더우기 팔기 위해 농사지은 게 아니라 먹으려고 텃밭에서 키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것도 이 곳을 찾게 하는 이유였다.
김장철이 되면서부터 육십할머니의 손길은 밤이 깊도록 분주했다. 기계로 까지 않고 손으로 깐 마늘의 주문량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십일월 중순쯤엔 깜빡깜빡 졸며 마늘을 깠기 때문인지, 댕기머리를 한 여자애가
마늘밭에서 우는 꿈을 간혹 꾸곤 했다. 그럴때면 집 한 칸 남겨주지 않고 아무리 두들겨도 떼어지지 않는 자식에 대한
짐만 잔뜩 남기고 간 영감이 원망스러웠지만, 부부로 살아온 십 여년동안 챙겨주고 다둑거려줬던 미욱한 정의 기억으로
먼저 간 사람을 용서하곤 했다. 껍질이 벗겨져 하애진 마늘을 소쿠리채 저울에 달며 한 주먹 더 올렸다 조금 덜어놨다를
반복하던 육십할머니가 고개를 든다. 길 건너 횡단보도 앞에 노인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냥 웃어본다.
에구, 저 노인네하고 오늘은 뭔 일로 싸우려나...걱정이 되면서도 반갑기도 한 어머니같은 노인이었다.
마침 하교시간이어서 좁은 길은 학생들로 꽉 찼다.
친구한테 뭐라뭐라 하더니 도망가는 학생한테 할머니가 밀려서 비틀거리는 걸 육십할머니는
깐 마늘을 소쿠리로 던지며 일어선다. 우드득...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오른 손을 뒷춤에 지고 노인이 잘 건너오나.......
끝까지 바라본다. 김치 한 가지로 떼운 점심이 허기를 몰고 온다, 연신 꼬로록거리는 배를 만지면서 예순일곱살의 오후를 달래본다.
팔십고개를 훌쩍 넘어섰다더니 짱짱하기가 아직도 한창인 노인이 바로 앞에 앉으며 다듬어진 시금치를 타박한다.
'얌통머리없기는...배들배들한 것도 팔아먹을라고 하는구먼...'
또 시비다. 앞으로 한 시간은 이어질 꾸준한 싸움이다. 그래야 오늘 장사를 마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오늘도 장사를 잘한 것이다.

시금치와 갓뭉치의 속까지 헤집으며 궁시렁거리던 팔십할머니가 쪽파를 파느라 대꾸가 없자
바가지에 담긴 무말랭이를 한 개 씹어먹으며 어째 밍밍한 게 중국산 인 것 같다고 느물거렸다.
쪽파를 비닐봉지에 넣으며 몇 해를 겪어봤으면서 내가 중국산 갖다 파는 것 봤냐고 육십할머니가 투박스레 말하자
사람 속을 어찌 알겠냐며 빈정대는데, 마음같아선 무말랭이를 팔십할머니 머리위로 쏟아붓고 싶었다.
허나 더는 옥신각신하고 싶지 않았다. 안 겪어본 일 없이 살아온 세월속에서 알아진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일이었다.
큰 놈이 아홉살, 작은 놈이 일곱살 되던 해였다.
역마살이 두껍게 낀 팔자를 이겨내지 못하고 일 년이면 서너달씩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소식조차 없던 영감이
쉬 죽을 병에 걸린 채 돌아온 후부턴 내 집 일보다 남의 집 일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었다.
그래도 영감이 죽기 전까진 고향인 공주 마곡사 근처에서 농사 품을 팔며 살 수 있었는데,
묻을 땅뙈기 한 평 없어 영감의 재를 강에 뿌리고선 그 곳을 떠났다.
막상 떠나겠다 마음먹고나니 처음부터 영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친정부모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다.

친정어머니는 영감과 살림을 차려야겠다고 전하자 기가 막힌지 하늘만 올려다 봤었다.
그리고선 스물 일곱된 딸의 어깨를 흔들며 몸부림쳤다. 안된다. 이건 아니다. 근본도 모를 뿐더러 열 몇살이나 차이나는 사람과
어찌 살겠다는거냐며 종내는 땅바닥에 실신하듯 주저앉았다. 어머니가 아무리 말려도 그 사람과 살아야겠다고 하고선
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서려 할 때였다. 눈을 홉뜬 채 구슬리기도 윽박지르기도 하던 어머니가 등 뒤에 대고
녹슨 못의 얼룩처럼 억세게 말했다. 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한테 기댈 생각일랑 말라더니 치마의 주름을 좍좍 쥐어뜯으며
방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가슴이 무여졌지만 쾅, 닫히는 문소리를 대문께에서 듣고 서 있던 딸은
두 손을 모았다. 어머니, 오늘 어머니 가슴에 박아논 못을 빼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도록 열심히 살게요, 우리 잘 살게요...
대문을 열고 나와 뒤돌아본 어머니의 방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 후 사는 게 펴지지 않아 찾아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부모님 곁에서
될수록 멀리 가자하고 발내린 곳은 대전이었다.
식장산 아랫마을인 천동을 이틀을 헤매다 찾아낸 지붕이 다 삭아내린 판자집이었다.
그래도 감지덕지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무작정 온 곳에서 비내리면 빗물에 젖고 눈내리면 눈물에 얼어붙을망정
자식 둘을 품고 잘 수 있는 집이 있었기에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면서도 힘든 줄 몰랐고, 도배지에 풀칠을 하면서도
끈적한 눈물 흘리지 않았다. 공사장에서 이런저런 뒷일을 다른 인부처럼 거뜬거뜬 일하지 못할 때, 귓속으로 꽉 들어차던
잔소리와 비아냥거림에 목이 메었다. 하지만 차차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어떤 말이 들려와도
한 쪽 귀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즉시 흘려보내야 자식들 배 곯리지 않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삼십 년이 흘렀고, 자식놈들 학교 다닐 때 가정방문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판자집을 떠나온 날은
공고를 졸업한 큰 놈이 자동차정비소를 다니며 부어넣은 천만원짜리 적금이 끝난 해인 1995년 가을이었다. 살아내자, ...살아내자.....그 마음을 여지껏 살아온 날의 맨 밑에 깔아두고 살았다.

누구도 알아낼 수 없이 깊은 곳에 들여놓은 절망도 섞였지만 꺼내보면 다신 품어두지 못할 수도 있을 희망이었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벌었을 뿐 잘 먹이지도 곱게 입히지도 못하며 모은 얼맛돈과 작은아들이 회사에서 빚내온
오백만원을 합해 옥계동 상가주택으로 전세들어 오던 날, 에미방이랍시고 안방에 들여논 화장대 위에
영정으로 쓰였던 영감의 사진을 올려놨다. 훤하진 않았지만 모난 데가 없던 사람에 대한 회한이 낯선 방안을 비추는
형광등 불빛만큼이나 창백했다. 한숨마저 차가왔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눈에 눈물 채우면 자식들 굶어 죽을까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면서도 절대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한뎃바람을 쐬지 않아도 되는 화장실의 문을 열며 흘렸다. 조금만 더 살다 가지...방안에서 오줌을 질금거릴망정
똥만큼은 그여이 변소로 가는 통에 겨울이면 변소안에서 자즈러지게 기침을 해대던 영감생각이 간절했다.
그 집에 오기까지 육십할머니는 일을 가리지 않았다. 세차장에서도 있어봤고,

분점이 몇 개나 되는 미용실에서 나오는 수건을 빨아주는 곳에도 다녔었고, 학교 앞 분식점에도 나갔었다.

두 아들이 벌고 육십할머니도 손 발을 부지런히 놀렸지만 형편은 늘 쨌다.
자식들이 벌어온 돈은 모조리 저축을 시켰다. 지금 고생해야 훗날이 그나마 편할거라고, 요즘 여자들은
단칸방부터 시작하는 결혼생활은 애초에 받아들일 맘 없을테고, 작은 차라도 끌고 다니는 남자를 더 좋아할테고,

그렇다고 해서 그 조건을 다 갖추라는 건 아니지만, 밑받침은 깔아둬야 될 거라고, 그 생각을 씨간장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긴

육십할머니는 일의 힘듦을 가리지 않았다. 어떡해서든지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곳을 찾자니.

돈벌이가 들쭉날쭉할 수 밖에 없었다.'일할 사람 안 구하는지, 묻기도 전에 떠밀려 나오고,

여기는 구하려나? 기웃대다 도로 나와야 할 때면 자신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내려가는 물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자괴는 이내 지워졌다. 바닷물도 처음엔 작은 개울이었거나
시궁창의 탁한 물이지 않았냐는, 소소한 위안이 받쳐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에 하는 일에 비해서 대접이 융숭한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술집의 주방일이었다. 마흔이 안된 주인여자와

잘 물려진 고리같은 사이를 유지하며 나이 쉰 둘이 될 때 까지 그 곳에 있었는데, 남의 여자 주물러가며 술 먹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주방에서 좀체로 나오지 않는 여자의 나이까질 들먹이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니냐고, 손 곱고 엉덩이 탱글한 여자가 썰어내는 과일이 낫지 집에서 손자나 봐야 할 노인네가
차려내는 안주로 뭔 술맛을 돋우겠냐며 낄낄대는 걸 들으며 육십할머니는 생각했다.
스스로는 한껏 당당하대도 남보기에 우스갯스런 이 일로 인해 자식들이 여자를 맞이하는데

장애물이 될 것도 같다는 생각에 일거리를 새로 찾았는데 농산물시장 채소전의 일이었다.

태어나길 시골에서 태어났고 뼈가 굵을 때 까지 파고 갈은 흙에서 나온 푸성귀들을 대하는 모습이 맘에 든 주인은

육십할머니한테 불손하게 대하는 손님이나 이웃상인들을 막아주는 바람막이였다.

그럼에도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모멸감 짙은 언행과 마주쳤지만 귀를 막아놨다고, 혹은 귀를 열어놨다고 스스로를 다졌다.

그러했기에 팔십할머니가 며칠을 잠 못자며 썰어 말린 무말랭이를 중국산이네 달착한 맛도 없네...하며 트집잡아도

대충대충 흘려버릴 수 있었다.

옆 포장마차에서 붕어빵과 오뎅을 파는 여자가 국물이 든 종이컵을 내민다.
육십할머니가 받아 쥐기기도 전에 팔십할머니가 손을 깔짝거린다. 뜨거우니까 불어마셔..걱정하며 건네주고선
끼익,하며 멈추는 차에 시선을 둔다. 차에서 내린 여자들이 길을 건너려다 줄기가 통통한 갓단을 가리키며 다가와
갓김치엔 멸치젓을 넣어야 맛있을까, 육젓을 넣을까, 까나리젓이 더 좋을까... 누구에게 묻는 것 아니게 수다를 떨자
국물을 마시던 팔십할머니가 여지껏 들어보지 못한 온순한 말투로
아니 여태껏 갓김치도 안 담아봤어? 갓김치에 육젓이 들어가면 쓴 맛이 더 하지., 그러니까 멸치젓을 넣으면 돼,
너무 짜면 맛없으니까 버무리면서 세 번 정도는 간봐야 할거야...
입술을 연신 닦아가며 갓김치 담그는 얘기를 늘어놓는 팔십할머니를 바라보자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시어머니를 보는 듯 했다. 아마도 시어머니는 말수가 적었을 것 같았다.
그랬기에 하루에 서 너 마디를 그것도 짧게 하던 영감같이 답답한 자식을 뒀을 것 아니겠냐는 회상이
팔십할머니 흰 머리 위로 떨어져 맺혔다.

육십할머니가 가장 꺼려한 말은, 아니 지워버린 말은 떠돌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영감을 평생 따라다녔다.
큰아들이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일곱 살쯤 되었을 땐가,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가는 친구가 부러웠는지

아버지... 나도 할아버지한테 가고 싶다고 하자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서더니,
아버지한테는 고향이 없다고 할 뿐 이었다. 옆에서 부자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육십할머니가 애한테 그게 할 말이냐고,
그냥 아버지가 태어나 살아온 합덕이란 고장은 여기서 가기엔 너무 먼 곳이라고,
그러니 나중에 네 발이 아버지처럼 크면 가보자고 하면 될 거 아니냐고 끼어 들자. 방문을 탁 닫고 나가던

영감의 뒷모습에서 떠돌이의 비애를 느꼈었다. 그 후로 아들은 아버지의 고향을 절대 찾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해선가, 몸이 자꾸 까부라지는 걸 느낀 육십할머니가
' 그거사 입맛따라 다르지, 나는 새병개젓을 넣어도 맛만 있더구먼, 하자 벌떡 일어선 팔십할머니,
고르게 놔 있는 시금치를 휘적거리며 퍽도 잘난 척 한다며 싫은 낯을 보이는데,

그 말에 댓거리를 치고 싶지 않게 몸이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 광경을 다발무를 고르던 여자가 웃고 갓을 고르던 여자들마저 할머니들 또 싸운다며
우리가 갓을 안 사면 안 싸울거냐고 화해의 다리를 놓아줘서 말싸움은 멈췄다.

두고 꽁할 필요도 없이 밋밋한 시작과 끝이었다.
다른 채소에 비해 팔려나가는 게 부실했던 갓이 한 단도 남김없이 다 팔리자 팔십할머니가 장사는 혼자 하는 것 보다
누가 거들어주면 더 많이 팔리는 거라며 시금치 한 뭉치하고 대파 한 단을 달라더니 생강은 덤으로 두 쪽만 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만원짜리를 건넨다. 시금치 값 1,500원 대파값 1,000원해서 2,500원이라고 하자
500원은 줄거라며 지갑을 뒤적거리기에 8,000원을 거슬러주자 돈을 세려보더니 왜 이러냐고,
내가 500원을 주면 9,000원을 줘야 맞는 거라고, 아니 어째서 9,000원이냐고, 만원에서 이천오백을 빼면 칠천오백인데,
할머니가 오백원을 준다 했으니 팔천원을 주면 되는 거라며 동전받을 손을 내밀자, 육십할머니 손을 탁 치더니
지금 늙은이라고 무시하는 거냐, 아무리 내가 나이를 먹었기로서니 빼기도 못 할 줄 아냐 하더니
주겠다던 오백원을 주지 않고 휙 돌아서 가는데, 쫓아가려던 육십할머니의 눈빛이 멀건해졌다.



꿉꿉해진 눈을 비비며 앉자 좀전부터 네 살쯤 된 아이에게 채소의 이름을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던 여자가

햇살에 닳은 은행잎같이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참 신기해요. 왜 두 분은 내가 볼 때마다 투닥거리지요?
전에는 깐 마늘갖고 근수가 다르네 맞네 한참을 실강이하더니... 오늘도 그러시네...
하기사 내가 이 시간에 여길 오는 건 어쩌면 저 할머니하고 할머니하고 오늘은 뭘 갖고 아웅다웅하실까? 궁금해져요.
할머니들이야 얹짢겠겠만 구경꾼인 나는 집에서도 할머니들 생각하며 웃음이 나다가도 조금 슬퍼져요.
뭐랄까, 사라져 가는 고향 장날이 떠오르고 우리 엄마도 시장에 가면 저럴까...
하는 생각에 뭉클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할머니가 매번 손해를 보는 것 같던대요?
지금도 할머니 계산이 맞는데 참고 말잖아요. 그런 거 보면 할머니가 이 곳에서 오래 장사하실 수 있는 까닭을 알 것 같아요.
당장 구멍이 뻥 뚫리게 손해날 게 아니면 참아 넘기는 성품이 보이거든요.
아마 저 할머니도 집에 가서 다시 계산해보고 담에 돈 드릴거예요, 내가 보기엔 저 할머니가 할머니한테 장난친 것 같거든요...
어수룩하게 늙으신 것도 아니고,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


그랬다. 가끔씩 오는 손자를 둔 할머니라 하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저 여자를 볼 때마다 육십할머니는
이 날까지 손자 손을 잡고 한가하게 걸어본 날이 없었던 게 가슴아팠다.
손자를 아끼는 마음이야 여느 할머니와 비교할 수 있겠냐만, 새벽에 집을 나와 밤늦게 돌아가면

초등학교 육학년인 큰 손자는 다녀오셨냐고 끄떡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
그런다고 우리 새끼 뭐하냐며 들여다 볼 수도 없는 일이라 할인마트 식품부에서 일하는 며느리가 준비해둔
밥을 먹고 나면 온 몸이 얼음이 녹을 때처럼 저려오면서 땅 속으로 빠져드는 듯 노곤하여 그만 잠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쉽게 든 잠은 새벽 한 시를 넘기지 못했다.
아래층에 노래방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이사올 적만 해도 개량한복점이라 상가주택 이층이긴 했어도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그런데 위층에 세든 입주자의 생활 따윈 안중에 두질 않고 노래방이 들어왔으니,

제한되지 않은 영업시간에서 오는 불편함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놓친 잠에 대한 울분을

찬 물 한 그릇으로 달래며 가끔씩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뭐가 얼마나 괴롭기에 새벽이 되도록 노래하고 술을 마셔야 하는 걸까,

저들은 기다리는 가족도 없고 또 일어나 살아야 하는 내일도 없는 걸까,
그러다 달빛이라도 비치는 날엔, 쿵쾅거리는 반주에 맞춰 육십할머니도 노래를 부르곤 했다.
참을 수가 없어도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여태 누구 앞에서 크게 소리내어 불러본 노래는 아니지만 홀몸으로 자식을 키워내면서 몇 번은 울먹이며 토해낸 타령이었다.
그렇듯 잠도 안 오고 까닭 약한 설움이 밀리는 새벽이면 정비소에서 일하느라 기름때가 잔뜩 배인 아들의 바지를 빨았다.
다른 옷가지는 몰라도 아들의 바지와 운동화만큼은 손빨래를 고집하는 육십할머니한테 며느리는
그러잖아도 비틀린 손목을 아예 망가뜨릴 셈이냐 불퉁거렸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육십할머니도 잘 몰랐다. 다만 양쪽이 든든하질 못하고 한쪽 사랑만 받고 자랐음에도
반듯하게 제대로 자라준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자식들이 배는 고프다 하고, 들여놓은 쌀은 없고,
그런 날이면 육십할머니는 세월을 향해 빌었다. 얼른 얼른 흘러서 우리 아들들 훌쩍 자라게 해 달라고,
바지도 지 아버지만큼 큰 걸 입게 해 주고, 신발도 지 아버지만큼 큰 걸 신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간구했다.
너무 간절하게 빌다보니 목에서 피가 나왔다.
목구멍으로 넘어온 피를 손으로 훔쳐내며 육십할머니는 영감을 만났던 그 해 가을을 원망했다.

그러다 미워했다. 그러면서 그리워했다.





왜 그 곳에 있었을까...왜 배우지 못했을까?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라도 제대로 졸업했더라면 친구들처럼 취직을 했을테고,

그랬다면 그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을 텐데,
아들이 뭐라고 오로지 아들 하나만 잘 가르치는 게 부모노릇 한 줄 아는 사람이 내 부모가 아니었다면 나는
마곡사 기념품가게에서 사찰용품이나 지팡이나 수건이나 말린 산나물을 팔진 않았을 텐데...

그러기만 했더라면 늦은 가을 날,
덥수룩한 모습으로 들어섰다 지팡이를 사 들고 나가며 흘린 그 사람의 사진 한 장을 줍지 않았을 테고,
이튿날, 사진을 혹시 이 곳에 떨궜나 해서 들렸다는 그 사람을 다신 만나지 않았을 테고,

오고 가는 시간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 않던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친 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그 사람과 밤길을 걷지 않아도 됐을텐데...
나이는 마흔을 넘긴 것처럼 보여 망설이긴 했지만 깊은 눈빛 하나로 내 마음을 온통 채우고 또 흩어놓기도 하던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쇳빛구름을 떠앉은 저녁해가 산을 넘어가지 못하고 걸려있다.
저처럼 벌겋지는 않았대도 가슴이 늘 홧홧하던 나도 세월고개를 넘고 넘어 왔는데....,후딱 넘어가면 그만일
저 산 하나 이겨내지 못하고 낑낑대는 햇덩이를 잠시 조롱한다. 바람이 불어 대파가 담긴 비닐봉지가 사락거린다
일어나 봉지를 아무리고 두 소쿠리 남은 상치의 마른 잎을 골라낸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넘어갈만도 할 허물이련만,
한 번 왔던 손님을 다시 오게 하려면 흠잡힐 것들은 아까워하지 않고 버리는 게 육십할머니의 장사수단이다.
서쪽하늘을 바라본다.
산꼭대기에 반쯤 걸려있는 붉은 노을이 눈에 익숙하다. 그랬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번갈아가며 수업료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오던 날 밤,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건만 아침에 보면 핏줄이 눈알을 덮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지 않으려고 자식들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선 쫓겨올 게 뻔한 학교에 가기 싫어 대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으면

"오늘 하루만 참고 가라"는 말대신 "니놈들이 그렇게 에미 속을 썩이면 끝이 뭔지나 아느냐고,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세상 그만 살고 얼른 얼른 오라며 니 아버지가 저기서 기다리고 있다고, 니 아버지한테 가기 싫으면 얼른 가라고,

가서 선생님이 때리면 맞고 쫓아보내면 오라고, 그러면 에미가 돈 구해올 날 있을 거라고, 그 날까지만 나 죽었소...."

하고 다니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그러면 아들들은 소맷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할 수 없이 걸어갔고, 그 자식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지켜보다

올려다본 감나무엔 죽음이 잎되어 팔랑거렸지만 그래도 살아냈던 건 까치가 울어서였다.

그 새소리는 육십할머니에게 있어 희망이었다.
기다림이었다. 아무도 엿보지 못하게 깊이 품어두는 내일에 대한 기도였다.

냉이와 깻잎 삭인 걸 팔고나니 사방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가로등의 옅은 불이 들어온다.
아파트 쇠담장에 걸어둔 끈을 풀어 묶다 욱씬거리는 손톱을 내려본다.
자를 새 없이 닳아버리는 손톱, 실핏줄까지가 물들어 까매진 고단한 삶의 명징한 흔적.... 손가락을 꺾어
뻣뻣한 마디를 풀고선 손수레를 바라본다. 길 위에 서지 않을 날까진 실컷 부려먹을 몸종이나

진배없는 수레위로 플라스틱 소쿠리와 길 위에서의 된 하루를 얹는다. 집으로 갈 시간이다.
매주 일요일은 육십할머니가 이 곳에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집에서 등허리를 방바닥에 대고 쉬는 것도 아니다.
이른 새벽, 이미 오래 전에 길들여진대로 집을 나선다. 그리고선 몇 시간 후에 법당에 앉아 끊임없이 죄의 값을 청한다.
아니 죄로부터의 용서를 구한다. 민영태...그 사람. 강요된 결혼생활에서 오는 피폐함을 견디지 못하고
부모와 처자식간의 인연을 끊고 떠나온 남자를 다시 돌려보내지 않고 살아버린 죄......
떠나간 자식을 남편을 아버지를 찾아나서지 않은 민영태... 그 사람의 고향을 미워한 죄.....
끊어야 살아지는 탯줄같이 질긴 가난이 두려워 둑 위를 넘실대는 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강물만 강물만 노려본 죄.....

길 위에서의 한 그릇 밥은 사람을 잘못한 것 없이 계면쩍게 했다.
걸어가며 일으키는 먼지따윈 거슬림없이 삼킬 수 있었지만, 저렇게도 사는구나...
하는 눈빛을 직접 꽂지 않고 흘깃거릴 땐, 넘어가려던 밥알이 목에 딱 걸렸다. 그래도 먹어야 했다.
세시를 훌쩍 남긴 시간, 아침부터 속이 메슥거리더니 오후 들어선 구토증까지 일었다.
속이 쓰릴 정도로 배가 고팠지만 도통 먹을 맘이 나지 않아 그럭저럭 견뎌보는 중이었다.
날씨가 바짝 추워져 목도리를 친친 감았는데도 몸을 움츠린다. 속이 비어 그런가...
오뎅국물을 스텐그릇에 얻어와 밥을 덜어 넣는다.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아랫목을 덥히던 온기가 스민 것 처럼 살 것 같다.
차갑던 몸이 따뜻함으로 전이되는 순간은 늘 그랬다. 사람을 긴장시키는 겨울, 그리고 길 위에서의 한 끼...

더럭 꼬라지가 말이 아닌 것 같아 머리카락을 쓸어본다. 뻣뻣한 감촉이 가슴을 덜컹덜컹 흔들어댄다.
다음 일요일엔 미장원에 들러 제멋대로 뻗쳐난 머리칼을 다듬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제대로 다둑이지 못한 삶에 미안해하며, 조금은 억울해하며,
그러하자면 먹히지 않는 밥일망정 넘겨야겠기에 맛이 오들오들한 오이장아찌를 씹으며 길 건너를 바라보다 웃는다.
며칠 째 오지 않아 사뭇 궁금하던 팔십할머니가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아픈가...하는 걱정이 들더니 저렇게 꼿꼿한 모습으로 다시 본다는 게 반가워 손을 까불대다 속엣웃음을 짓는다.
와봤자 속이나 긁어놓는 할망구가 뭐가 반갑다는 건지...
폭이 좁은 길을 건너온 팔십할머니가 보자마자 볼부은 소리로 뭐라 한다.
'세상에...김장철 지나 팔 것도 없을 건데, 뭔 떼돈 벌겠다고 이제사 밥이여,이 짓도 결국은 먹자고 하는 일인데....'
하더니 육십할머니를 딱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내가 돈 벌라고 안 먹었간? 밥맛이 없어서 건너뛰려다 할 수 없이 먹는거구먼...그나저나 뭔 일 있었댜?
며칠동안 오지도 않고...'
'왜 내가 팩 고꾸라져서 죽은 줄 알았나?'
' 뭔 말을 그리 한 대? 내둥 잘 오던 사람이 안 오니께 걱정돼서 그런거지...'
하며 식어버린 국물을 풀밭으로 쏟아버리고 밥그릇을 닫으려고 하는데.
' 얼래? 별일이네, 내가 안 오니까 걱정했단 말이야? 나는 그 쪽이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근데 그건 뭐야?
참 맛나보이네...이리 대봐. 맛 좀 보게...' 하며 오이장아찌를 집어먹는 팔십할머니를 찬찬히 바라보는 육십할머니의
입언저리에 겨울오후만큼이나 스산한 웃음이 묻어난다. '
조금 달지? 나는 단 걸 싫어하는디 우리 며늘애는 설탕가루를 들이붓는다니까...
그렇다고 내 입맛에 맞춰 따로 무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저냥 먹긴 하지만 언젠가는 시금치를 무치는데도 설탕을 넣기에 뭐라 했더니,
애들이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참으시면 안되냐고... 또박또박 대들더라니까...그렇게 사네...
그렇다고 며늘애가 착하지 않다는 건 아니고...착하지,암 착하지....
쥐뿔도 없는 집으로 시집와서 살아주는 것 만도 착한 일이지...'

꺼낼 맘 전혀 없던 타령이 고양이와 쥐처럼 옥신각신이 잦은 팔십할머니한테 스스럼없이 터지는 걸

육십할머니는 이 년 넘는 세월이 쌓아준 정의 일부이거니....여겼다.
'세상이 변했잖아...세상이...옛날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생각해 봐, 우리가 시어머니 모실 때 어떠했는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다보면 나는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가 않았어. 시아버지와 남편은
아랫목에 따로 차려낸 밥상에서 드셨었는데,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은 무엇인가를 살펴야 했고,
혹시라도 집었다 도로 내려놓는 반찬은 부엌에서 맛을 보고 보면서 왜 그랬는가를 알아냈었지...
그러자니 나는 늘 체한 듯 속이 더부룩했어. 눈치보는 일처럼 불편한 게 없잖아... 그랬지...그러고 살았지....
그런데 요즘 며느리들. 시부모는 뒷전이고, 그렇다고 남편이 제일도 아니고 그저 자식...자식이 먼저야.....
.하기사 우리도 그랬을지 몰라, 남편이나 시부모보다는 자식이 먼저였을거라구..그런데 그걸 표시내선 안됐지..
.그저 속으로만 꼭 꼭 품어두고, 어른들 눈에 안 띄이게 에미의 정을 드러내야 했지..그러고 살았지...정말...


팔십할머니의 푸념어린 세월을 듣자니 마음 한 켠이 저려왔다.
여지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부모에 대한 죄책감이 가지뿐인 은행나무 너머로 아른거렸다. 부러웠다. 부끄러웠다.
한편으론 같은 여자이면서 저처럼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보는 정당한 대우를 누려보지 못했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그런저런 감정을 참자니 볼이 땡기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부당함, 불편함, 불행함...

그 모든 게 겹친 세월이 훌쩍 날아와 훌렁거리는데 어지러웠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감은 눈 사이로 웅덩이가 파이면서 닫아둔 세월이 가까이 보인다.
큰아들을 호적에 올려야 했기에 남편한테 고향을 물었지만 남편은 좋은 날이 오면 그때 가자...하던...
하지만 그가 말한 좋은 날은 끝내 오지 않았고, 아들 둘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선 친정 남동생의 호적에 올려야 했다.
그렇게 누구의 아내이기도 누구의 어머니이지도 못한 처녀로 덮여진 채 살면서도 깊은 밤,
먼 데서 개짖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덜컹했다. 혹시 민영태란 아들을 찾으러 온

부모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짖는 게 아닌가 하는...


팔십할머니도 무슨 생각에 잠겨선가, 말을 하지 않는 채 주먹으로 눈시울을 훔치고선 육십할머니를 향해 웃는데,
행복하지 않을 게 훤히 보이는 사람한테로 가는 딸을 바라보던 친정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그렇듯 애틋한 연민이 곁들여진 시선이 부담스러워 밥그릇을 챙겨 손수레에 올리려고 일어서자
'내일은 나랑 같이 밥먹어, 지고추가 노릿짱하니 잘 삭았는데 맛좀 보라구...'
'지고추? 어디서 났는디? 여기선 안 사갔잖아.'
'으응, 며칠 전에 고향에 다녀왔거든, 시아버지 제사라서....몇 년을 못 갔었는데, 올해도 안 가고 애들만 보낼까 했는데,
거 그렇대? 왜 찬 바람이 불면 올 겨울이 자신없어지지? 꼭 내년 봄꽃을 못 볼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마지막일지 모른다...하는 맘으로 다녀왔지... 갔더니 풍년이대...온통 들뿐인 곳인데,

어릴 때 올라가 놀던 볏단이 전처럼은 아니어도 수북수북 쌓였더라니까......
그래서 아들한테 나 저기좀 올려달라고 했다가 지청구만 먹었네.저기서 떨어지면 어떡할라고 그러냐고.매정한 놈,
거기보다 더 높고 험한 서방가슴에서 떨어졌을 때도 살아났는데... 죽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기어올라 살아있는데...
지깐게 뭘 안다고...그치 않아?'
'글쎄...자식이니까 걱정되었던게지...그나저나 고향이 어딘데? 시골인 것 같긴 하지만...'
'합덕....'
'합덕? 합덕이라구?'
'왜 그리 놀란대? 합덕 알아?'

먹먹했다. 너무 먹먹해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마르고 바로 앞에 그어진 횡단보도의 흰 선이 꿈틀거리면서 눈을 감고 죽기 한 해 전인 추석 날,
휘엉하니 뜬 달을 보며 합덕면에서 민면장 하면 많은 사람이 존경할만큼 덕망이 높은 아버지와

솥뚜껑 여는 소리조차 조심하던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밭은기침을 해대던 영감의 핼쓱한 모습을 당겨오고 있었다.
한참동안 시선을 땅에 두며 고작 십년만 살아줄거면서 한 밧줄에 질기게도 묶어논 영감과의 인연을 덧없어한다.
이제라도 헤어나고 싶은 시절이다. 더는 손사래치고 싶지 않는 기억이다.
다만 자식과 손자들 앞에서 그러한 세월을 살았던 것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알기는...가 본 적도 없는데...갈 수도 없는 곳이기도 했고...'
'으응, 나는 하도 놀라 묻기에 고향이 거긴가 해서...'
'그런데 합덕 어디래? '
'내가 살던 곳은 합덕에서 외떨어진 곳이지만 시집은 배를 타고 강 하나를 건너왔어.
우강이라고...묏등 하나 없이 보이는 게 전부 들판인....들판 끝자락이 가물가물하게 아득한 곳이지...'

우강...우강....거기까지 말하고 일어서는 팔십할머니를 바라볼 수 없었다.
눈을 맞추면 그림자조차 끼지 않았던 지난 날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 같아 차차 서녘으로 가는 햇덩이나 바라본다.
아무도 끄지 못하게 불타오름이 확연하다. 저러고 싶다. 뜨는 모습도 다 보여주고.
지는 모습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자신감에 휩싸이고 싶다. 여지껏을 살아오며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자연적이지도 못했던 자신을 이젠 드러내고 싶다는 마음이, 저녁해를 받아주는 서쪽하늘의 온유속으로 스민다

. 아니 답답한 속 풀어내려 마셔댄 막걸리처럼 벌꺽벌꺽 든다.
내일 따순 밥까지 해오겠다 하고 길을 건너는 팔십할머니를 바라보는 눈빛이 점점 추워짐을 느낀다.
한 시간만 버티면 만원은 더 벌겠기도 하련만, 오늘은 이쯤에서 길 위의 삶을 접고 싶다.
쇳빛구름에 묻힌 채로 넘어가는 저녁해마냥 절대적인 포용을 마다 않으며 ......


밤이 깊도록 빗소리에 쫓겨선지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볏짚을 새로 얹은 초가집 마당에 초례청이 차려져 있었는데, 영감이 사모관대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만났을 때의 젊은 모습으로...마을에 잔치가 있다 해서 미적거리며 들어섰던 육십할머니는
구렛나루가 뚜렷한 신랑을 본 순간
숨이 막혔다. 왜 저 양반이 저기 있을까...죽은지가 언젠데...앞에 족두리를 쓴 여자는 왠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을까...누굴까...온 몸이 떨려 옴짝도 못하고 있는 육십할머니한테로 아들들이
다가와 집에 가자고 조른다. 저기 니 아버지가 있다고 해도 아들들은 아니라고,
저 사람이 왜 우리 아버지냐고 하며 빨리 가자고 보채고 있을 때 였다.
저 웃음이었던가? 떨어뜨린 사진을 건네주자 날 보며 짓던 웃음이?
사립문께에서 달달 떨고 있는 육십할머니를 본 신랑이
저벅저벅 걸어와 손을 내밀자 연지곤지가 동백꽃잎같이 싯붉던 신부가 달려와 육십할머니는 밀어뜨렸다.
덜푸덕...주저앉은 육십할머니 위로 거칠고 굵은 모랫바람이 불어와 눈 속으로 가득가득 들어차고,
하늘엔 까마귀던가? 새떼가 까맣게 날아가고 있었다.
엄마...집에 가...엄마...집에 가....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을 잡아당기는데도
눈이 떠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꾹꾹 눌러 끔뻑여도 앞은 캄캄했고,
저것들하고 살아야 하는데 왜 이러냐고 손가락으로 눈알을 후벼파다 놀라 깼다.

기가 막혔다. 왜 이런 꿈을 꾸는건지....
떠난지 서른 해가 넘도록 좀체로나타나지 않던 영감이 하필이면 그런 모습으로 보인건지...
아니면 내가 잘못 본건지...애들 말마따나 민영태, 그 사람이 아닌데 나한테만 그 사람으로 보인건지...
가슴 아래서부터 목마른 그리움이 치밀어올라 덜푸덕하니 서러워진다.


생각할수록 서러워지는 꿈이다. 같이 산 세월이 짧은 탓도 있었지만, 족두리는 고사하고 단 둘이
사진 한 장 박아두지 않은 걸 원망하진 않았다. 그걸 원망해선 안되는 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런데 큰아들을 장가보내던 날, 하얀 드레스를 입은 며느리를 보자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하객이나 심지어 아들들까지도 혼자 키워낸 것에 대한 회한인 줄 알아 육십할머니의 눈물을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여자로서 누려보지 못한 축복이 새삼 슬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헛헛함은 결혼식장을 나서면서 지워졌었다.
세상엔 똑같게 누려야 할 복이 있겠지만 덜 누린들 불편하지 않은 복도 있음을 진즉부터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꿈을 꾼 걸까...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새벽 다섯시...비는 그쳐가고, 시장에 갈 시간이다.
맘이 내키지 않아 손때가 번들번들하게 묻은 전대를 차며 망설인다.
비가 오면 나는 없었다. 비가 올 것이란 낌새를 주지 않던 하늘이 빗자락을 쏟아내리면 우산을 땅바닥에 펴고,

그 안으로 채소를 들여놨다. 나는 젖어도 되지만 채소만큼은 비에 젖지 말아야 했다.

머리에서는 빗물이 흘러내리고 옷은 젖어 착 달라붙고, 그 꼴이란 비맞은 새앙쥐같아 다른 사람에게 웃음거리?

혹은 측은함?을 줄 수도 있지만 나는 아무렇대도 상관없었다. 그저 우산 속 채소들, 말린 나물들한테 흙물이라도 튀었을까....

눈길이 오래 갈 수 밖에 없었다. 저 채소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확신.... 빗속에서 잡아 묶는 삶의 끈이었다.
새벽부터 이 생각 저 생각을 추스리다보니 목이 아프다, 뻑뻑하다, 소리라도 지르고나면 풀어질 것 같은 답답함을
흠, 흠...헛기침으로 풀어본다. 그 소리에 깼는지 며느리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비 그쳤냐고...
어지간하면 쉬시라고 헝크러진 머리칼을 넘기며 말한다.
" 이 짓도 며칠 남았간디...길어야 열흘이것지...애들 밥 든든히 먹여 학교 보내고, 애비 꿀물이라도 타줘라...
하고선 현관문을 나서는데, " 어머니...잠깐만요, 도시락 안 싸가시네요? 찬 밥 드시기 마땅찮지요?
어머니...오늘은 컵라면 드시지 말고 따듯한 거 시켜 드세요, 여기 돈 있어요...돈 아까와하지 말고 꼭 밥 드셔요...
꼭요..." 하며 오천원을 건넨다." 나는 돈 없간디. 시장에 가서 국밥 사 먹으면 되니까 걱정마라,
점심이야 겨울은 해가 짧으니까 안 먹어도 돼,내 걱정은 말고 애비나 든든히 챙겨 먹여라...간다...아이고, 에미야,
저기 베란다에 우거지 삶은 것 좀 꽉 짜 와라, 물기 없이 꽉 짜라" "어머니...우거지도 파세요? "
" 아니, 팔라고 하는 게 아녀...누구좀 줄라고...내가 거기서 편하게 장사하도록 도와준 사람이 있거든...너도 생각날거다.
처음 얼마간은 한 곳에서 며칠을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거,
아파트 입구에 장사치가 꼬이면 집값 떨어진다고 여편네들이 생난리를 부렸었잖아,
그런데 그런 우리를 측은하게 여긴 한 여자가
반상회때 한 마디 한 게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더라, 그 여자말이
우리가 조금 비껴서고 조금 좁게 가면 조금 비껴섰던 삶이, 조금 좁던 삶이 조금이라도 반듯해지고
조금이라도 넓어질 거 아니냐고....했단다.
그래서 그후부턴 아예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된거지... 늘 나한테서 채소를 사가는 여자인데, 자주 같이 오던 사람이
'할머니, 이젠 맘 편하게 장사하세요. 이 언니가요.
그동안 할머니 저쪽으로 이쪽으로 옮겨 다니는 거 굉장히 딱해 하더니 반상회때 진심으로 바란다고 하면서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 할머닌 먹으려고 기른 것만 갖다 파니까 사먹는 우리도 좋은 거 아니냐고...다들 찬성하더라구요.'
그 후로 그 여자가 상추라도 사가면 고마워서 한 주먹 더 얹어주면 기여히 두고 가.
자기들은 식구가 없어서 이만큼이면 된다고, 더 달라는 사람한테나 줘서 단골 많이 잡으라고...'
그런 사람이 있어...그런 사람이... "

말하는 육십할머니나 듣는 며느리나 시선이 아래로 모아진다.
서로를 바라본다면 표현하지 못했던 자식과 부모간의 다정때문에 울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죄송해요...어머니...죄송해요...'
'야가 식전부터 별 말을 다 한다..다녀오마...애들 늦지않게 깨워라, 너도 일 잘 다녀오고...
참, 둘째네한테 전화해서 김치 가져가라고 해라,'

비 그친 새벽공기가 폐부를 깊숙히 찌르고 들어온다. 밤내내 움크렸던 가슴을 편다.
아.......숨을 들이마신다. 살 것 같다. 하늘을 본다.
어둑한 저너머에 결혼식을 올려주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는 한 남자가 있겠지...
아마도 그게 못내 한스러워 그 모습으로 날 찾아 왔겠지...그런데 족도리가 예쁘던 신부는 어디서 봤던걸까?
왜 낯이 익지? 왜 자주 본 듯 눈.코.입이 눈에 박히지? 누구지? 누구였지?

시장엘 가려면 신호등을 여러 번 지나가야 했다.
오늘따라 밤에 비가 내려선지 손수레 바퀴가 빡빡하니 무겁다.
달리는 자동차도 드물어 사방이 조용하니까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가도 되련만, 육십할머니는 열 군데도 넘는 횡단보도에서
녹색불이 켜질 때 까지 기다린다. 스스로 지켜야 하는 질서를 무시하면 빈부를 떠나 똑같은 모습으로 불행해진다는 걸
녹색불을 기다리며 알아걌다. 같은 짓을 저질렀는데, 부자라고 벌이 가볍고, 가난하다고 벌이 가혹하다면

폭폭해서 못 살 일이지만, 아직까지 그렇다는 걸 느끼지 않으니,그것하나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세상이었다.
그런 감정은 가진 자에 대한 적대심이 아니라 . 부와 빈이 절대적으로 저울질되는 현실에서 유독 공평한 것이 있다면

신호등이라는 생각때문에 밤낮없이 깜빡이는 신호등이 친근할 따름이었다. 믿어도 좋을 친구같았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구르는 수레바퀴의 털털거림을 줄이려면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더러 불빛이 비치지만 어둑어둑함이 짙은 새벽과 아직 깨어나지 않은 어제에게 내어주는 배려이다.

마지막 횡단보도를 지나면 다리가 나온다. 길이가 오십미터쯤 될까한 긴 다리였다.
그 다릿목으로 들어서면 대낮처럼 훤한 시장이 보인다. 그제서야 숨을 돌린 육십할머니,
사는 게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는 그 곳을 바라보며 몰린 숨을 내쉰다. 휴우.......갈 길마저 조금 쉬게 한다.
그리고선 다리난간에 서서 대전천을 내려다본다. 다리에 쭉 서 있는 가로등불빛이 물 위로 내려앉아
어른어른하니 자뭇 찬란하기조차 하다. 멀리로는 고향을 떠나와 처음 둥지를 틀었던 곳인 식장산이 희뿌연하게 보인다.
그 산 아래에 살며 한번도 올라가보지 못한 꼭대기에서 쏘아보내는 불빛이 미처 품지 못한, 아니 품기엔 너무 멀어
지레 놓아버린 희망이듯 가느랗지만 강하다. 육십할머니한테 있어 산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산 아래에서 태어났기에 산은 동무이듯 부모이듯 익숙할 줄 알았다. 허나 민영태, 그 사람을 만났던 곳이
산 아래 잃은 곳도 산 아래였던 이후로는 산이란, 아무리 셈을 잘해도 소수점 이하가 끝나지 않는 무한소수였다.

끝까지 정리되지 않는 애증이었다. 그만큼의 망막함이었다. 그래서 싫어졌다. 오르는 것도, 바라보는 것도, 다......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댄다. 거리엔 하나 둘 씩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동차들은 안개등을 켠 채 질주한다.
다들 서두르지 않으면 안위를 놓치기라도 할 듯 앞만 보고 가는 새벽녘,
잠시 놓아뒀던 길을 서두른다. 얼른 가 드럼통안에서 피어오르는 모닥불같은 얼굴들과 마주하고 싶다.
그리하여 김장철은 지났어도 분주하긴 매한가지인 시장사람들과 선지국을 먹으며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음을 고마워하고 싶다.
꿈풀이에 능한 민자네한테 꿈이야길 털어놔야지.
.영감은 날 두고 어찌 다른 여자와 혼례를 한 것이며, 혼례할 여자가 있는데도 나한테로 와 웃었던건지...
어째서 나는 초례청 앞으로 다가서질 못하고 멍하게 바라보며 저 남자가 민영태, 그 사람이 아니기만을 바랐던건지.....

시장안으로 들어서면 여러 냄새가 났다.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기른 고랭지배추의 숨통이 트일만큼의 풋풋함과 신안 바닷마을에서 재배한 육쪽마늘이 품어내는
매큼함,졸린 눈을 비벼가며 그것들을 싣고 온 트럭운전수들의 걸쭉한 입담과 땀내와
그 입담을 받아내며 하루를 짝 벌어지게 여는 상인들의 정내음이 한창 스미고 있었다.
마주치는 얼굴과 눈인사를 하거나 손을 살짝 들어보이던 유십할머니가 코를 벌름거린다.
처음 이 곳에 올 적엔 지붕이 천막이라 비나 눈이 오면 빈 틈으로 물이 스며들어 신발을 찌꺽여야 했는데,
몇 년전 새 건물이 들어선 후론 바닥이 일년내내 보송보송했다.
하지만 야채 썪는 냄새는 바람막이가 튼튼한 지금이 더 심해서 여간한 비위 아니고는 맡아내기 힘들었다.
그래도 저 냄새가 있어 살아온 날이 있다.
오륙년전만 해도 배춧잎이 쌓이기도 전에 기다렸다 주워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육십할머니 역시 그랬다. 버려진 채소들을 가져다가 조금 성한 건 김치를 담고
나머진 우거지로 끓여 먹으면서 자식들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한번도 주워온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엔 어머니가 주워온 배추로
김치를 담도록 내버려둘 자식은 없거나 흔치 않아 보였다.
육십할머니 역시 배추겉잎을 못 먹는 것으로 아는 여자들을 자주 본다.
배추의 푸른 잎을 전부 떼내라고 하는 여자한테 왜 이리 아까운 걸 그러느냐고, 삶으면 얼마나 맛있는 시래기가 되는데...
하며 푸른 잎 떼기를 망설이면, 가져가야 쓰레기로 나갈 거라며 삐죽대는 여자와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보다는
가치있는 걸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는 게 풍요인줄 아는 저런 팔자는 부럽지 않다는 옹골찬 주관으로 삭이곤 했다.
시장안으로 들어갈수록 썩어가는 중인 배춧잎에서 풍기는 냄새가 심하다. 보통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따스함을

육십할머니는 언덕만큼이나 수북하게 쌓인 물러터진 배춧잎한테서 자주 느낀다.
마치 실연기가 모락거리는 고향집 두엄밭을 지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해괴망칙한 꿈을 꾸어선가? 육십할머니의 머릿속으로 너무 오래된 일이 선명하게 스치고 있었다.

오랜 날을 밖으로 돌던 영감이 돌아온 어느 봄 밤이었다.
평소에는 우스갯소리를 하지 않던 영감이 육십할머니를 당겨 안으며 '"당신한테서 나는 냄새는 이리 좋은데...
흐음...흐음...이렇게 상큼한데...'우리 어머니가 머리감고 와서 나를 안아줄 때 맡았던 냄새야...맞아 , 그 냄새야..".

하며 자꾸 파고들기에 ' 그럼 다른 여자한테선 뭔 냄새가 났는디요?' 하고 묻자
손을 살며시 내리며 돌아눕는 영감의 등에 대고
' 별 맘 없이 한 말이에요, 나는 당신이 어떤 여자의 냄새를 떠올려도 탓하지 않아요,
또한 나랑 애들만 지켜달라고도 말 못해요, 당신은 말을 안해주지만 대충은 알거든요,
당신한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걸요, 그러니까 당신은 늘 어머니와 찍은 사진을 품고 있잖아요,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당신은..,돌아가야 될 곳이기도 하구요, 그러니 내가 한 말 고깝게 여기지 말아요,....
하며 울먹이자 머리를 끌어당겨 안아주던 영감의 모습과, 나와 다른 여자의 냄새는 어떻게 다른걸까?
하는 궁금증을 못 참아내고 영감이 떠난 후 더러 자신의 몸에 코를 대던 여자의 본능이 쓰레기냄새에 섞여
육십할머니의 새벽을 흔들고 있었다.

머지않아 길 위에서의 하루를 접어야 함을 실감한다.
얼마전만 해도 손수레를 끄는 육십할머니의 머리가 안 보일 정도로 수북하게 쌓이던 채소들이 몇 자루 밖에 되지 않아
길바닥에 펴논 채소의 꼴이란 게, 아들 이름 아래에 동거녀로 올라있는 육십할머니의 존재감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잎을 다듬어 쭉 펼쳐 놓는다. 일부러든 지나가다든 눈에 보이길 바라며....
무슨 현상으로 겨울이 혹독하게 춥질 않아 개나리꽃이 피기도 한다는 십이월 중순,
왠지 오가는 사람들의 눈빛과 마주치기가 싫어진다.
자신의 지난 삶이 선지국밥 같다는 생각이 벌건 핏덩이가 끓어 까뭇하게 변한 선지를 씹을 때 울컥 들었다.
본질을 숨기고 살아온 죄뭉치였던 것일까?
생각할수록 서러워지는 삶에서 한 발짝도 멀어지지 않는 현실이 우려내기 힘든 자책으로 변했다.
한 계절을 보내려면 얼토당토하지 않은 꿈을 꾸곤 했지만 어제처럼 막막하진 않았다.
꿈풀이를 해주던 명자네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으로 나타나면 집안에 우환이 낄 징조라고 했다.
더군다나 사모관대와 연지곤지를 봤다면 심신을 묶고 있던 끈이 끊어짐을 예견하는 거라며

당분간 사람의 다가섬을 조심하라고 했다.
될수록 사람과 부닥치지 말고 외면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로라도 꿈땜을 할 거라고...

< 그러지, 그러지...여태도 물러서기만 한 삶이었는데 이제와서 뭐 부닥칠 일 있겠나,
물러서지 뭐, 차라리 도망쳐 숨어버리지 뭐, 나쁜 액이 우리 자식들한테만 닿지 않는다면 꼭 꼭 숨어버리지 뭐......>
무청이 길쭉한 총각무 몇 단과 대파 몇 단과 적상추가 담긴 봉지하고 깐 마늘 몇 사발,
토란 한 소쿠리와 생강 한 소쿠리, 무말랭이 봉지와 고춧가루가 담긴 플라스틱 사각통이 전부인

길 위를 쓸어 다독거리며 마음먹는 육십할머니,
이미 말라터진 마늘뿌리를 작은 칼로 도려내고선 손가락 부분을 구멍낸 장갑을 끼고 마늘을 쪼갠다.
벌써 단단해진 마늘속을 어금니로 깨물어 갈라낸다. 볼이 씰룩거린다.
볼이 통통하다고 볼팅이라 불리우던 그 곳으로 주름이 깊게 파여, 이를 악물 때 마다 볼의 주름이 늠실거렸다.
말하지 않아도 속엣맘 다 안다는 듯, 세월은 떨어져 박히는 돌덩이가 아니라

이처럼 저처럼 출렁이며 흐르는 물살임을 알려주듯이...
혹은 꽝 꽝 얼어붙은 가슴 안의 세월들이 저마다의 줄기를 풀고 가슴밖으로 나와 새 둥지를 찾아가는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어찌보면 아이들 소꼽하는 것 마냥 가짓수도 적고 양도 많지 않은 노점판을 지나가며 슬쩍 보고 가는 눈빛이나
그 눈빛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수그려 붙인 채 마늘만 까는 육십할머니의 눈빛이나 시덥잖긴 매한가지인
겨울날의 오후가 흘러 한시를 넘어선다.
새벽에 먹은 선짓국이 개운찮게 더부룩하다. 그래서 오뎅국물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길 건너에서 큼지막한 가방을 든 팔십할머니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때서야 어제 '내일 밥을 갖고 오겠다'고 했던 게 생각난 육십할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국물이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장난감을 사 쥔 아아의 손처럼 흔들리는 종이백한테로 시선을 보내며 슬핏 웃는다.
쑥스러움이 잔뜩 배인 실웃음이었다.
여느 여자처럼 아니 장사치처럼 말투가 정답지도 못했는데 타인으로부터 저런 대접을 받는다는 게 편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황급하게 건너온 팔십할머니가 종이컵을 들고 멀뚱히 서 있는 육십할머니를 보며 지청구다.
'배고파서 그걸 먹는거여? 사람도 참 이상하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걸....밥 안 먹었지? 내가 어제 그랬잖아,
오늘 밥 싸온다고...새로 밥을 해 오려다 늦었어, 늙을수록 밥시간을 지켜야 하는 줄 알면서...'
'아니여, 목이 타서 마시려던 참이여, 근데 뭔 밥을 싸오고 그런대여? 안 먹어도 되는디...
뭐할라구 성가신 짓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 사람 참 말하는 뽐새좀 보소, 성가시긴 뭐가 성가시다는거여....혼자 먹는 밥 하도 질려서 같이 좀 먹겠다는건데...
그나저나 얼른 앉어, 얼른... 저기 뭐 좀 펼 게 없을까? 땅바닥에 내려놓고 먹긴 그렇잖아....'
'나야 땅바닥에서 먹어도 되지만 아주머니야 그럴 팔자는 아니잖여, 남사스럽게 왜 이런대....' 하며
감자를 올려놨던 박스를 들고 와 앞에 놓자 종이가방에서 주섬주섬 통을 꺼내는 팔십할머니의 등허리로
하루 중 제일 따뜻한 햇살이 박꽃처럼 환하게 내려 앉는다.
'얼른 와 한 술 떠 봐, 이 지고추 좀 먹어봐, 아무리 소태같던 입맛도 이거 하나 깨물면 싹 가신다니까...
얼른....얼른....참 어리굴젓 좋아하나 몰라? 삼삼한 게 내 입엔 딱 맞던데...'
눈시울이 붉어진다. 목젖이 뻐근해지고 가슴 아랫쪽이 도르르 말리는 듯 뻐근하다.
사람한테 이만한 대우를 받기 위해선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분에 넘치는 대우란 게 이렇듯 불편하기도 뿌듯하기도 한 걸까?

은수저까지 챙겨온 팔십할머니의 마음씨가 가늠할 수 없을만치 깊어 보이기도 하고,
타인과의 밥 한 끼를 위해 세세하게 마음 쓴 팔십할머니의 여유가 부럽기도 하다.
검은 쌀이 들어가 팥죽색이 감도는 밥에 숟갈을 대자니 목이 메인다. 그런 육십할머니 손에 지고추를 집어 주며
'밥 먹는 게 참 보기 싫구먼 , 어째 그런대...늙은이가 해온 밥이니 달게 먹어야지...
얼른 이 고추좀 먹어봐, 정말 달착지근하니 맛나다니까...얼른.......'
'너무 고마워서 이러지...맛이 없어 이러간? 그란디 이 고추가 합덕에서 가져온 거래?"
하며 점점 침침해지는 분위기를 바꿔보려다 생각없이 내뱉은 '합덕'이라는 말이 목에 걸린 가시같다.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이 따끔하기만 한 통증을 느낀다.


큰아들이 결혼할 즈음, 아버지의 고향을 궁금해하는 자식들 앞에서 육십할머닌 다부지게 말했었다.
'세상엔 가지 못할 곳이 없는 줄 알지만 나한테는 딱 한 군데가 있다. 너희 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합덕이란 곳이다.
나는 앞으로 합덕이란 말을 내뱉지 않으련다. 그 곳에 가 너희 핏줄을 찾을라치면 금방 찾아지겠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너희 아버지가 스스로 걸어나온 길을 너희 아버지 없이 걸어 들어갈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한 때는 너희 아버질 원망했다. 저 어린 것들 기죽지 않게 아버지의 고향을 보여주지...
나는 없다치고, 봐라, 여기가 아버지 고향인 합덕이라고 잘 알려주지....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면서.....
왜 자식들한테까지 아버지의 빈 터를 물려준건지... 그게 얼마나 무거운 짐인 줄 모르고...이제라도 너희들이
그 짐을 내려놓고 싶다면 말릴수야 없다만, 내 맘은 이렇다. 아버지가 정리하지 못하고 떠난 길은 그냥 내버려두자고....
그러다보면 언젠간 그 길은 잡초에 덮여 길이었던 흔적을 잃어갈 것 아니겠니...내가 생각이 모자라 이러는건진 몰라도
나는 너희 아버지의 허방 깊은 세월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
했던 시절이 바늘에 꽂혀 독기를 잃어버린 지고추를 들고 있는 손가락 사이를 휘어돌고 있었다.

숟가락을 든 채 뭔가에 골똘하게 빠져있는 육십할머니를 툭 친 팔십할머니, 보란 듯이 밥을 우걱우걱 씹으며
'그렇지, 저번에 가져 왔다니까...어때? 맛 괜찮지? 입에 맞으면 조금 싸 올게, 집에 가서 두고 먹어,
입맛 없을 때 물이라도 말아서 먹으라구, 그래야 살지...오늘보니까 얼굴이 형편없네, 어제와 달라...
감기 든거야? 몸 챙겨...늙을수록 지 몸은 지가 챙겨야 해, 자식들도 부모 아픈 꼴 안 보려는 세상이니까...'
하나 하나 챙기는 모습이 꼭 언니같고 어머니같은 팔십할머니를 축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태를 넘겨 지내왔지만 이처럼 오손도손한 적도 없었다는 게 미안해진다.
어느 날인가는 삿대질을 해가며 다툰 적도 있다. 고춧가루를 팔면서였다. 고춧가루 세 근을 달라 하기에
일키로 이백을 훌쩍 넘겨 삼백까지 올려놓고 많이 줬지? 하자 대뜸 '뭐하는 거야, 고춧가루 세 근이면 천 팔백이지....
어째서 삼백도 안 되는거냐고 삿대질을 하며 억지를 쓰기 시작하는데,
몇 번을 마른 건 한 근이 400이고 생 것이 600이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지금 덜 늙었다고
더 늙은 사람을 조롱하는 거냐며 악을 쓰는 통에 할머니한테는 고춧가루 안 판다고 고춧가루 봉투를 꽁꽁 묶었었다.
그러자 같이 늙어가는 주제에 할머닌 무슨 할머니냐고, 듣기좋게 형님이라 하면 어때서....
라고 트집잡는 걸 더는 대꾸하지 않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었다.
결국 그 날 고춧가루는 팔지 않았다. 그러고도 팔십할머닌 이튿 날 채소를 사러 왔다.
입 안에 뭔 말을 잔뜩 물었는지 볼이 부은 모습으로... 어젯일도 있고 해서 본체만체 하자
'장사를 하려면 집에다 속을 빼놓고 와야 하는거라'며 달래는건지 약올리는건지 헷갈리게 하는데,
그런 두 사람을 가까이서 보는 붕어빵 굽는 여자는 아무래도 두 분이 전생에 인연이 깊었나보라고...

그러지 않고서야 다신 안 볼 듯 으르렁거리고 갔으면서도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찾아오는 것 아니겠냐고...
그러니 육십할머니가 너그러이 받아주라고...... 얘기했었다.

길 위에서 먹는 밥이 뜻밖에 달큼하니 먹을만 했다.
처음엔 넘길까 싶더니만 물이 찍찍 뿜어져 나오는 지고추와 어리굴젓으로 찬을 해선지
찬합으로 가득했던 밥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몇 숟갈 남은 밥을 육십할머니한테 마저 먹으라고 하고선 보온병을 꺼내 마개를 연다.
싸아하니 풍기는 냄새가 좋다. 나는 늙었어도 밥을 먹고나면 꼭 커피를 마셔야 살겠더라구...
술을 못 마시니 느글느글한 속을 커피로 달래며 살았네....참.......긴 세월이었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여온 세월이 말이야... 거기도 커피 좋아하나? '
독백이듯 중얼대는 팔십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육십할머닌 어떤 위로를 느낀다.
저리 곱상한 노후를 보내면서도 그 속엔 독사보다 더 독한 독을 품고 있었다니......
절대로 아는 척 해선 안되는 슬픔과의 응결이었다.

종이컵에서 피어나는 커피의 온기를 두 손으로 감싼다. 따듯하다.

새벽부터 소용돌이쳐 떨리기만 하던 속이 조금은 후끈하다.
살겠다. 살아나겠다....싶어진다. 오후에 마시면 잠을 못 이루는 통에 여간해선 마시길 꺼려했건만 오늘은 마시고 싶다.
몇 잔이고 마시고 싶어진다. 죽으면 깨어나지 못할 잠, 조금 덜 자면 어떤가...
이젠 새벽에 일어나 길을 걷는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앞에 있는 팔십할머니가 더럭 가까워진다.
이제라도 말을 고분고분하고 싶다.

영감을 따라나서기 전까지 언니...언니...하며 따르던 순영언니를 대하듯 곰상스러워지고 싶다.
알고보면 슬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뜯어보면 행복보단 불행의 겹을 두르고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런저런 사람들 속에서 원수이듯 매일 만나 티격태격한 것 만도 특별한 인연이라고....여기며
'근데 거기선 언제 떠나왔대?'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팔십할머니의 지나온 세월을 궁금해한다.



'나는 아들을 셋 뒀는데 터울이 커, 큰 애는 올 해가 환갑이고 서울에 살아, 지금 사는 데가 둘째 아들집인데, 딱 쉰이야.
그 아들이 대전 중구청으로 첫 발령 받은 해였으니까 벌써 삼십년이 다 되가네, 나는 안 오려고 했어,
거기서 기다릴 사람이 있었거든, 시부모님도 계셨고, 그런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하시대,
다들 이 곳을 떠날 수 있으면 떠나라고, 대신 아내인, 그러니까 우리시어머님의 삼년상을 치른 후에 떠나라고 부탁하셨지,
나는 그 집안의 맏며느리였지, 일정시대때 구장을 지낼만큼 똑똑한 분이셨는데,
그 분이 내가 툇마루에 앉아 먼 하늘만 보고 있으면 내 옆에 앉으시면서 미안하다고,
세상엔 공들여 안 될게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너 볼 면목이 없다시며 힘들어 하셨어,
남편보다는 아버님의 맘에 들어 치룬 결혼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어, 신랑될 사람이 눈길 하나 주지 않는대도 결혼하겠다고 선뜻 맘을 먹었었으니까...
어휴...어찌 견뎌냈나 몰라...하늘보다 더 어려운 시부모를 모시는 일보다 남편없는 집안을 소리없이 꾸려나가자면
나는 한숨도 쉬지 말아야 했거든...내가 조금만 우울하면 시부모님들, 당신들의 죄인양 수저를 들지 않으시니...
소박? 소박이라는 말 알아? 내가 그랬어, 시집에서 쫓겨난 게 아니라 남편의 마음 안에서 내몰린거지.
그걸 괴로워 지쳐하면 세상 이치 그럭저럭 알만하게 큰 아들들 잘못 풀릴까 늘 웃는 낯이어야 했어,
거 참, 사람도...밥 한 끼 먹자는데 왜 옛날 이야긴 들추게 하나....속이 아프네...병이야...
다른 땐 괜찮은데 지난 날만 떠올리면 속에서 뭔가가 막 찔러, 꼬챙이같은 게 온 가슴을 훼벼..........
커피좀 더 마셔야겠네....거기도 더 마시지? '

커피를 더는 마실 수 없었다. 목이 꽉 차 올랐다.
무언가가 잡힐 듯 하고, 무언가를 탁 깨트릴 것도 같은 아슬아슬함이 육십할머니의 머릿속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팔십할머니의 옛 일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고 싶어지는 알 수 없음을 육십할머닌 느낀다. 어지럽다.
시야가 온통 흔들리고 떨린다. 종이컵을 쥐고 있는 팔십할머니의 손이 바르르 바르르 떨리고,
그걸 바라보는 육십할머니의 눈빛도 파르르하니 떨리고, 나뭇잎 한 장 남기지 않은 은행나무도 바람에 흔들리고,
빨간 불인데도 바퀴달린 신발을 신고 휙 하니 건너오는 남자아이의 어깨도 흔들리고,
길가에 세워진 트럭에선 대학 찰옥수수라 쓰여진 천쪼가리가 미친 여자 날궂이하듯 나부끼고,
거리로 나와 담배를 피워가며 점점 더 심해지는 불경기를 한탄하는 택시기사들의 발 끝이
위로 아래로 흔들리는 겨울, 오후 두 시...

커피를 마시고도 한참동안 아무 말 없던 팔십할머니가 짐짓 불콰해진 눈빛으로 육십할머닐 바라보며
'거기는 영감없어? 한번도 못 본 것 같아서...자식은 몇이고?' 물어온다.
'영감은 무슨 영감........진즉에 없지....자식은 아들만 둘인데.......애비없이도 잘 컸지...

저만하게 반듯한 집 한 채 없이 살아 그렇지, 심성이야 우리 아들들 따라올 사람 없어....
그게 내가 든든해 하는 재산이야.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으니 자식들 착한 것을 재산으로라도 삼아야지........'
'그럼...그럼....아, 돈 많으면 뭐해, 자식놈 속 썩이면 도루묵인걸, 나만도 그래,
남편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게 떠나갔지만 자식들이 그걸 흠으로 여기질 않고 떳떳하게 제 자릴 잡아주는데...

.참 고맙더라구,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믿나봐...그치 않아? 조금은 공평하거든....서방 복 없는 년,

자식 복이라도 주고, 부모 덕이라도 내려준 게 아닐까? '
'영감과 어떻게 헤어졌기에 그래? 딴 여자랑 눈이 맞았었나벼? '
'흐응.....글쎄,...그건 모르지...왜 집을 떠나갔는지...그리고 왜 돌아오지 않았는지....
나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도 몰랐어...아니 시부모님은 알았을지 몰라, 대신 나한테 까닭을 말해주지 않았을 따름이지...
처음엔 궁금했어. 분했고...몇 년간은 방황으로 여겨져 기다렸어, 매일 대문도 안 잠그고 그 사람의 밥 그릇에
제일 먼저 밥을 퍼 담았고, 그러다 또 몇 년이 지나자 방황이 아니라 바람으로 인정했어, 어디선가
나보다 잘난 여자를 만나 살겠지...그러면서도 기다림을 포기하진 않았어, 내가 기다림을 포기하면 아들들마저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야....그러다 아버님이 쓰러지셨지, 술도 안 드시고 드나드는 친구도 없이
붓과 벼루로 하루를 보내던 어른이셨는데, 이리농림을 졸업하고 소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던 남편이

교장과 크게 싸웠었나봐, 일정시대였으니 당연히 교장도 일본사람이었고, 전해 듣기로는 그 교장이

조선학생을 심하게 모욕한 걸 참아내지 못하고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대다 밀쳤대....

그 사건으로 남편은 주재소에 끌려 갔었지만, 다행히 구장을 지낸 시아버님이 빨리 손 써서
고문은 받지 않고 풀려났대... 그 후로 남편은 잘 모르면 실성한 듯 싶게 행동했나봐, 원래 생각하는게, 그게 뭐더라

사유? 생각하는게 우물같은 사람이었지.너무 깊었던 게 탈이었지. 늘....

그 당시에 소작인들이 많았잖아. 거의가 논, 밭을 빌어서 대신 농사를 짓고,그 댓가를 가을 추수에 받았는데,

대부분 지주들은 소작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질 않고, 소 .. 코뚜레에 꿰인 소로 여겼니봐, 끌고 가는대로, 끌려와야 되는,

만약에 주인이 끄는대로 오질 않고 뒷걸음질을 친다거나 멈춰 서 있으면 절대 안 되는,

오로지 논갈이, 밭갈이에 충실한 소로 멸시하면서 수확해서 받치는 쌀이 소작인은 양심껏 내놨는데도,

어떡해서든지 소작인한테 불리하도록 핑계를 잡아 쌀가마니를 더 챙기곤 했나봐.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소작인들은 다음 농사엔 논 한 마지기 부칠 생각말라고 으름짱을 놓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어.

그런 일이 더러 일어났었나봐, 그래서 한 번은 남편이 그 마을에서 제일 가는 지주네 곳간을 때려부수려고

도끼질을 했나봐. 그렇게 가난한 피를 빨아먹고 천년만년 살아본들 그게 사람사는거냐고, 그러면서

불을 지르려고 성냥을 켜대자 , 아버님이 워낙이 인품을 쌓아논 곳이라서 그랬는지, 쌀 열가마니를 내놓으면서

덜 가져간 사람한테 실려 보냈대. 그만큼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걸 못 참는 성격이었대

그런데 나라 뺏기고, 애국가도 못 부르고, 그런 학교에 다니는다는 게,영 싫었을거야. 그 와중에 조선학생이

교장한테 따귀를 맞고 혼나는 걸 보니까 내내 누르고 있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터졌던게지 반 쯤 실성했다고

믿었대, 눈알도 돌아가는 것 같았고, 여태껏 집 안팍에서 소리없이 조용하기만 하던 남편이

낮이나 밤이나 상관없이 사람이 지나가면 악을 쓰며 대들듯이 뛰어오고, 그러니까 다들 미쳤다고 했겠지.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럴만하다....하고 이해하고 받아줬지만 남들은 그게 아니잖아.
길을 가는데 괜히 흘겨보면 기분나쁘잖아, 아마 남편은 원래 눈이 나빠 그런건데, 사람들의 시선은 각도가 달랐나봐,
남편이 맘을 못 잡고 그러고 다니자 집에선 결혼을 시키면 나아질까....싶어 나랑 혼사를 서둘렀대...
그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이어선지, 안정적이진 못했어, 늘 바람같았고, 비구름같았고, 천둥같았고, 벼락같았고,
어느 땐 비를 훔씬 맞은 새 같기도 했어, 그 때 마을사람들이 남편을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 민삿갓이라고 불렀어,
방랑이 심했거든... 집에 있는 날은 일년에 서 너달도 안되었으니 그럴만도 하지...더우기 시골이었으니 소문이 오죽 빨라?
심하게 부풀기도 하고? 지금 여자들 같으면 당장 때려칠 결혼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집에 들를 적 마다
품어주는 남편의 살내음이 좋아 언제 올까.......언제 올까...........기다렸어.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기다려지대...
그런 식으로 큰 아이가 열 아홉이 될 때 까지 들락날락이며 그나마 아들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우리 곁에 머물었었는데...


내가 막둥이를 낳던 해, 여름이었지... 그 막둥이가 지금 마흔 하나니까, 사 십년 전인가봐.
구정을 지내고 나갔던 남편이 장맛비가 주룩대는 밤에 들어와선, 아랫목에 눕혀져 있는 핏덩일보고 놀라는거야..
.마치 저건 뭐냐는 식으로...나는 하도 오랜만에 보게 된 자식이라 감회스러운가보다....생각했지.
그래서 한번 안아보라고, 어머니가 그러는데 당신을 닮았다 하더라고 하자,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밖으로 나가대,
놀랐지. 그래서 따라나가 오기 싫은 집이었느냐고.....오랜만에 와 새 자식을 봤으면 들여다보던지 안아주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공손하던 전과는 다른 말투로 몰아대자 부기도 덜 빠진 나를 홱 밀치더니 도로 나가는거야.....
그 날 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가 물어 물어 아들이 있다는 술집을 찾아 갔더니... 어머니한테 그러더래...
"어머니, 아랫목에 있는 핏덩인 누구의 것이지요?? 어머니가 생각해도 오해이거나 착각인 게 분명한 사실을
극구 사실화하려는 아들을 그 날 어머닌 데려오지 않았어, 그 며칠 후, 내가 그 술집엘 찾아갔지. 남편이 탁자에 쓰러져 있더군,
흔들어 깨웠어....민우아버지..집에 가셔야지요.......하자 벌떡 일어나 나를 밀치더니 또 밖으로 뛰쳐나간 남편을
나는 쫓아가지 않았어... 그리고선 나보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던 남편은 내가 오기 전에 벌써 집을 떠났는데,
떠나기 전에 시아버지께서 큰아들에게 이 말을 했었다네....
'우리 집엔 너는 없어도 되지만 민우에민 있어야 한다. 정을 떼려면 정당하게 떼거라. 되지도 않는 추측으로
한 여자를 죄인으로 몰지 말고........앞으로 이 집을 비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수 없다면 다신 돌아오지 마라,
민우와 민식이, 저기 민섭이, 또 민우에민 내가 돌본다...네 몫까지 다 챙겨 보살피려니...가거라..

.다신 눈 앞에 나타나지 말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건, 나한테서 남편을 기다리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진, 남편이 떠나고 난 이십년도 넘은 후였어,
아마도 시아버지의 나에 대한 신뢰를 진즉에 알았다면 나는 남편을 기다리는 일을 더 일찍 포기했으련만....
어리석게도 아직까진 폐경되기 전의 여자라는 것만 내세우며 밤바람이 불면 그일까,
빗소리에 지붕이 툭툭이면 그일까....긴 밤을 이래저래 설레곤 했었네...후유........왜 이런거지?
내가? 왜, 내가 거기한테 여지껏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못한 말을 해댄거지? 미안하네, 장사하는데 와서 지껄여서....
그런데, 시원하기도 해...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하고 대숲에서 외쳤던 이발사가 되어버린 것 같아,
오늘따라 손님이 없네...얼른얼른 손님이 몰려야 할텐데....나 상추좀 줘, 오백원어치만.......'

상추를 달라고 해도 아무런 대꾸조차 없이 정물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육십할머닐 바짝 쳐다보던 팔십할머니가 놀라 일어선다.
'아니 왜 울어...내가 딱해서? 아냐...나 딱하지 않아...인연이 아니었던 사람을 인연으로 품으려 했던 세월이 딱한거지....
울지마 이 사람아..........울지 말라니까...' 하며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로 가 휴지를 뜯어와
꽉 쥐고 있는 육십할머니 손에 쥐어준다. 휴지를 밀어내는 할머니, 휴지를 기어코 주려는 할머니..
그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던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들지 못하는 육십할머니를 보고 놀란다.

'어머니......왜 이러세요, 어머니.....애들엄마가 어머니 점심을 안 싸가셨다고, 뭐라도 드셨느지 모르겠다고 해서 와 봤더니..
.아프세요? 어머니!......저 좀 보세요......' 아들의 목소리엔 울음이 그득 차 있었다.
육십할머니 앞에서 괜한 이야길 했구나...
하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하던 팔십할머니가 아들로 보이는 사람의 기척을 반기며 일어선다.
일어서선 어머니가 점심을 굶었을까....찾아 온 아들을 바라본다.....눈이 음푹하니 깊고,
콧대가 다소 메부리코같고 콧망울이 동글하고, 걸림없이 잘 빠진 하관이며, 반쯤 곱슬한 머리카락까지가 낯설지 않다.
아들이 부르는 소리에 놀라 일어난 육십할머니의 얼굴은 눈물로 번들번들했다.

간신히 아들과 눈을 맞추고선 몸을 돌려 담장만 바라보는 육십할머니를 제쳐두고, 아들이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팔십할머니, 숨이 콱 막혀오면서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한다.
길 위에 너저분히 널려있던 것들을 하나 하나 자동차로 옮기다 어머니한테 휴지를 쥐어주려던 노인이
피곤한 기색으로 서 있는 걸 보고선 고개를 숙인다. 귀가 참 잘 생겼다.
귓볼이 도톰하니 안으로 굽은 게 일 년에 두 어 번 안아줄 뿐이었던 사람을 그래도 남편으로 여기며 기다리던 아내를

부정한 여자로 치부해 버리고선 제 씨앗마저 짓뭉개고 떠나간 남자, 그 남자와 퍽 닮았다. 똑같다.

뒷모습을 보인 채 어깨를 들썩이는 육십할머니를 더는 위로해 줄 힘조차 잃어가고 있다.
쓸데없는 말을 지껄여 괜한 사람 울적하게 했음을 미안해 할 수 없다. 숨이 막혔다가 거칠어진다.
아무나 붙잡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얼른얼른 치우고 어머닐 집으로 모시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급해선지,
짐을 나르는 발길이 씩씩하다.
나이는 막둥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덜 먹어보이기도 하는 남자가 다가오면,

사 십년 가까이 멈춰있던 애증의 피돌기가 펌프질이라도 당하는 듯 콸콸거리고,

짐을 들고 멀어지면 별을 따보려던 손짓만큼이나 아득하다.

'어머니, 짐 다 실었어요.. 수레는 트렁크에 실었구요..가세요. 오늘은 그만 쉬셔야겠어요.
얼굴빛이 너무 안 좋아요...참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 곁에 있어줘서...며칠동안 안색이 흐려지시더니....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어머니........얼른 차에 오르세요... 저 그럼, 이만........'

깍듯이 인사하고 차에 오르는 남자를 따라가던 팔십할머니의 시선은 거기서 멈췄다.
얼굴을 들지 않은 모습으로 차에 오른 육십할머니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떠나는 걸 팔십할머니도 바라보지 않았다.
다만 세상 어디엔가는 인연이 닿지 않았는대도 똑 같거나 많이 닮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가슴떨림없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딱해하며 간장이 배어 밑부분이 축축한 종이가방을 들고

녹색 불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후 며칠동안 팔십할머니는 길 건너에 서 있었다.
녹색불이 들어와도 건너지 않고 한참을 서 있다 돌아가는 걸, 붕어빵 굽는 여자가 보고선 그마저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선 오뎅국물을 건네면 주름뿐인 얼굴로 웃던 육십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디 편찮으신가...아직은 며칠 더 나와 부쩍 오른 가스값이라도 벌어가실 분인데...
아니면 그 곳엘 서둘러 가셨나? 유성 어느 교회에서 치매노인들만 보살피는데,
친정부모와 시부모의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던 게 한이 되어 자식들마저 외면하는 노인들을 부모처럼 여기면서
말동무라도 해주며 겨울을 나겠다고 하시더니만.... 아이구 참, 저 할머니 또 오셨네...

소리를 질러야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다 익은 붕어빵을 꺼내는 쇠꼬챙이를 마구 흔든다.
오늘도 안 나왔다고...내일도 안 나올 것 같다고......그러니 할머니도 그만 나오시라고........
또한 육십할머니가 돌아오실, 꼭 돌아오실 내년 봄까지 건강하시라고......
여러가지 마음이 담긴 손짓이었음을 길 건너 팔십할머닌 아셨을까?

뒤돌아가는 팔십할머니의 등허리로 은빛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가려 보이지 않는 할머니를 보려고 까치발을 든 여자의 포장마차 지붕위로
나뭇가지가 내어준 햇살이 자락자락 스미는 겨울 오후,


길 위에 또 하나의 길이 있음을 말해주듯 참새 한 마리,
갖가지 채소가 펼쳐져 있던 길 위로 내려앉아 짹짹거린다.
마치 내려앉아 부리를 쪼아대면 곱다 곱다 하시며 좁쌀을 뿌려주던 할머니를 찾듯이...
기다리듯이... 그렇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