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울만큼만 사랑하자 *** 김현수 ***
  가난한 날 2004-12-26
긴 겨울밤을 채우던 시래기죽처럼 가난한 공기가
털목도릴 코까지 두른
빨간 함지박의 갈치아줌마한테까지 배어
다섯마리 이만 이천원의 값을 흥정하지 못하게 한다
가난한 정물들, 그 위로 흐느러지는 햇살들,
시동을 걸어논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개인택시 운전대의 주위로 가난한 공기가 또 박히고,
한 대의 택시가 바짝 붙어 또 선다
쓸쓸한 정물들 속으로
기침이 쏟아진다
택시기사가 기다리는 발길같이
펑.펑 흩어진다
가난이란게 첫 눈처럼 설레이거나
주룩비처럼 애잔하거나
햇콩으로 걸러낸 비지처럼 구수하면 좀 좋을까
따슨 두부 한 모로 공기를 휘저어본다
교회의 십자가나 잎없이 버티는 나목이 더없이 가난해 보이는
해 끝엔
말하지 못해 움푹하거나 말할 수 없어 그렁한 눈빛, 눈길들을
팔팔 끓는 두부탕 뚝배기로 받아들고선
흙벽과 햇살놀이하던 시래기의 온기로 다둑인다면
먹어도 배고프던 겨울죽처럼의 가난한 날이
만월처럼 불끈불끈 차 흐르지 않겠느냐고...